금성 고분군

한자 金城 古墳群
중문 金城墓葬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동광향 금성촌  
시대 선사/청동기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양식 봉석묘
크기 3,000㎡[면적]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9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0년
소재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동광향 금성촌
모형 전시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동광향 금성촌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 왕청현(汪淸縣) 동광향(東光鄕) 금성촌(金城村)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분군.

위치

금성 고분군은 왕청현성(王淸縣城) 동쪽 4㎞의 동광향 금성촌 서측 약 20m의 작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 500m 정도에는 왕청하(王淸河)가 동에서 서로 흘러 알아하(嘎呀河)로 유입된다.

왕청하 양안은 동서가 넓고, 남북이 좁은 비교적 개활한 산간 분지이다. 고분군은 분지 동부의 북쪽 가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서는 구불구불 이어진 주향(走向)의 산맥과 붙어 있다.

고분군이 자리한 작은 언덕은 높은 산에서 남으로 펼쳐진 지맥으로 남단은 높이가 10여 m이며, 북쪽으로 가면 높아져 산 정상에 이른다. 언덕 동·남의 양면은 비교적 험준하여 40°∼60°이며, 서쪽은 비교적 완만하여 20°에 불과하다. 무덤은 모두 동·남 가파른 고개와 산 정상부에 위치하며, 서쪽의 완만한 비탈에는 무덤이 보이지 않는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금성 고분군은 1979년 5월 길림성 고고훈련반(吉林省考古訓練班)이 왕청현 고고 조사 때에 발견한 것으로, 7기의 무덤을 시굴하였다. 1989년 길림성 문물공작대 등의 단위가 33기를 정리하였는데 두 차례에 걸쳐 총 40기를 발굴하였다. 모두 토광봉석묘(土坑封石墓)이다.

금성 고분군은 두 구역으로 나뉘는데 동·남 가파른 비탈의 28기가 한 구역이고, 산 정상 열사탑 북쪽의 12기가 또 다른 한 구역이다. 산비탈 무덤 구역은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산 정상 무덤 구역은 모두 근년에 수로를 파내면서 파괴되었다. 모든 고분군의 지층 퇴적이 비교적 단순하여 고분군 지층 정황이 일치하는데 표토(表土)를 제거하면 곧 무덤 정상의 봉석(封石)이 노출된다. 묘광(墓坑) 아래는 곧 원생토(原生土)이다.

40기 무덤의 구축 방식은 모두 동일한 방법을 채용하였는데 토광봉석묘[土坑封石墓]이다. 먼저 무덤의 상단부를 장방형 토광(土坑)의 바닥 보다 약간 크게 파내고 묘벽(墓壁) 만드는데 완전히 정연하지 않다. 매장 후에 다시 크기가 다른 강자갈[河卵石]으로 봉하며, 봉석은 묘실 입구보다 높으며, 모두 묘도(墓道)가 보이지 않는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1.8∼3m, 너비 0.8∼1.8m이며, 깊이가 0.4∼1.2m이다.

금성 고분의 대부분은 유골이 이미 부패하여 잘게 부수어져 위치가 흐트러졌다. 보존 상태가 양호한 7기의 무덤은 모두 앙신직지장(仰身直肢葬)이다. 각 무덤의 인골 수량은 고르지 않는데 수량을 확인 할 수 있는 무덤은 단인장(單人葬) 22기, 쌍인장(雙人葬) 6기, 다인합장(多人合葬) 2기가 있으며, 나머지 10여 기에는 유골이 보이지 않는다.

인골이 출토된 30기 무덤 가운데 5기 무덤은 자작나무 껍질로 시신을 감싸서 불태운 흔적이 발견되었다. 부장품의 진열이 비교적 무질서하여 규율성이 없으며, 인골과 부장품은 묘광 바닥[墓底]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 봉석 표면과 봉석 속에서도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

금성 고분군의 부장품은 비교적 풍부한데 주로 토기, 석기, 골기, 청동기, 장식품 등 몇 종류가 있다.

토기는 모두 수제(手製)이며, 거칠게 만들어졌으며, 기벽(器壁)은 두께가 균일하지 않으며, 구연부는 높이가 고르지 않으며, 구연부와 바닥부가 정연하지 않으며, 기벽은 비록 다듬어졌으나 안팎으로 광택이 나지 않으며, 색깔은 일치하지 않고 다수가 하나의 토기에서 여러 색이 보이는데 그 색깔은 기본적으로 갈색·적갈색·회갈색 등이며, 기물의 원형은 두터우며, 모래 섞인 알갱이가 비교적 크다. 기형(器形)은 분(盆)·발(鉢)·관(罐)·완(碗)·배(杯) 등이 있으며, 이외에 제기 받침[豆座] 잔편 1점이 발견되었다.

석기의 출토 수량은 매우 많으며, 기형은 석부(石斧)·석분(石錛)·석모(石矛)·석도(石刀)·석착(石鑿)·고리모양 석기[環狀石器]·베틀북모양(梭形) 석기·석서(石鋤)·석촉(石鏃)·갈판[磨盤] 등 10여 종이 있다.

골기(骨器)는 수량이 많지 않으며, 추(錐)·조각 골판(骨板)·구멍 뚫린 골판 등 세 종류가 있다. 골추(骨錐)는 동물의 요골(橈骨)를 이용하였으며, 발가락뼈[趾骨]로 만들었는데 한쪽 끝은 관절면(關節面)을 그대로 두었고, 다른 한쪽 끝은 뾰족하고 가늘게 갈았다.

조각 골판 1점은 쪼갠 동물의 장골(長骨)로 만들었으며, 중앙에는 뚫린 구멍(穿孔) 두 개가 있으며, 표면에는 직선과 교차하는 사선으로 조성된 도안을 새겼다. 구멍 뚫린 골판은 1점으로 현재 이미 손상되었으며 일부분만 남아 있다. 쪼개진 동물의 장골(長骨)로 만들었으며, 전체가 마제(磨製)이며, 양측에 일정한 구도에 따라 작은 둥근 구멍이 뚫려 있다.

장식품의 기형은 단일하여 수량이 비교적 많은 석관(石管)·골관(骨管) 등을 제외하면 몇 점의 석추(石墜)와 석주(石珠)가 있다. 청동 단추[銅扣]는 2점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청동으로 주조되었으며, 원형의 무문이며, 배면(背面)에는 뉴(紐)가 있다.

의의와 평가

금성 고분군의 두 무덤 구역은 무덤 형식이 서로 동일하며, 지층 상황도 일치하며, 출토 기물도 차별이 없어 동일 시기의 무덤에 속한다. 해당 무덤군은 연변 지구에서 연길(延吉) 소영자(小營子) 무덤에 이어서 발굴 수량이 비교적 많은 원시 사회 말기의 씨족 공동 묘지로, 이미 청동기 시대에 진입하였다.

금성 고분군의 무덤은 알아하(嘎呀河) 유역의 신화려(新華閭) 고분 및 천고령 고분과 구조상에서 차이가 있으나 출토된 부장품 분석에 의하면 문화 내용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다만 토기의 제작 기법과 기형이 발달하지 못하였으며, 석부는 전체를 문질러 광택을 낸 것이 매우 드물다. 이런 것들은 금성 고분군의 연대가 상대적으로 이른 것을 반영한 것으로,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이다.

참고문헌
  • 『汪淸縣 文物志』(吉林省 文物志 編委會 主編, 1983)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中國地圖出版社,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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