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 만기 고분군

한자 金穀 晩期 古墳群
중문 金谷晩期墓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덕신향 금곡촌  
시대 선사/청동기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양식 돌널무덤, 움무덤
크기 M6(돌널무덤)의 석관 바깥면 : 3.20m[길이]|1.35m[너비]|약 0.70m[깊이]M11(돌널무덤)의 토광 : 약 1.90m[길이]|0.60m[너비]|0.20~0.30m[깊이]M12(움무덤)의 묘갱 : 길이 2m[길이]|0.68m[너비]|0.42m[현존 깊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7∼1979년
소재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덕신향 금곡촌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 용정시(龍井市) 덕신향(德新鄕) 금곡촌(金谷村)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분군.

위치

금곡 말기 고분군은 금곡댐[金谷水庫] 서측 언덕의 양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덕신향(德新鄕) 소재지와 약 10㎞ 떨어져 있다. 무덤 구역의 동서 양측 언덕의 말단에는 각기 작은 개울이 있는데 하나는 팔도하(八道河) 상원(上源)이며, 또 하나는 팔도하 상원의 지류이다. 북부 언덕에는 금곡의 이른 시기 유적이 있으며, 남쪽 약 0.5㎞ 거리의 먼 언덕 위에는 금곡 말기 유적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연변 박물관이 1977∼1979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고분에 대해 조사 및 정리를 진행하였다. 모두 14기의 무덤을 정리하였다.

형태

무덤은 산등성이를 따라 배열되어 남북으로 대략 일자형을 띠고 있으며, 비교적 중부에 밀집되어 있고 양끝에는 비교적 드물다. 무덤 간의 거리는 가까운 것은 1∼2m, 먼 것은 7∼8m이다. 그 가운데 2기가 파괴되었다. 무덤은 모두 동서 방향이며, 방향은 50°∼80°에 있다. 이들 무덤은 모두 파괴되었는데 그 가운데 5기[M1·3·4·8·9]는 더욱 심각하여 어떤 것은 묘갱(墓坑)의 작은 부분만이 남아 있다. 20∼30㎝ 두께의 표토층을 제거하면, 장방형의 묘광(墓框)을 볼 수 있다. 그 구조는 대체로 3종류로 나뉜다.

제1종은 돌널무덤[石棺墓]으로, 모두 2기이다. 장방형의 수혈토갱(竪穴土坑) 안은 석판을 세워 묘벽을 쌓았으며, 묘의 바닥[墓底]에는 석판이 깔려 있으며, 묘정(墓頂) 역시 석판이 덮여 있다. 석판은 모두 불규칙한 회황색 암석이다. 해당 지역에서는 이런 석재가 없으므로 외지에서 반입한 것이다.

제2종은 토광묘[土坑墓]로 모두 7기이다. 모두 장방형의 수혈토갱이고, 그 한쪽 끝 또는 묘갱(墓坑) 가장자리에는 약간의 작은 돌[石塊] 또는 석판이 놓여져 있다.

제3종은 돌널무덤과 토광묘의 사이에 끼인 중간형으로, 모두 4기이다. 이들 무덤은 수혈 토갱이며, 부분적으로 석재를 사용했는데 어떤 것은 무덤 양 끝에만 돌[石塊]로 쌓거나 석판을 세웠으며[M13], 어떤 것은 묘실 바닥에 한 겹의 석판을 깔았다.

14기 무덤 가운데 썩은 나무가 남아 있는 것은 6기인데 어떤 것은 남북 양벽에, 어떤 것은 사람 유골의 상부에 있다.

묘실의 보존이 비교적 양호한 9기의 무덤을 보면, 인골은 모두 어수선하고 온전하지 않다. 거의 다인합장묘(多人合葬墓)로 매장풍속이 비교적 특수하다. 묘갱 하나에 3·4구~7·8구가 있으며, 그 가운데 1차장 유골이 있고, 2차로 옮겨온 유골이 있다. 대다수는 앙신직지(仰身直肢)이며, 머리 부분은 어떤 것은 동쪽을 향하고, 어떤 것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인골 뼈대는 일반적으로 2행으로 나누어 배열되어 있고 2~3겹으로 누르고 있다. 성별상으로 보면 남녀 모두가 있으며, 연령상 보면 노년·중년이 있으며, 어떤 무덤 안에서는 청소년 또는 아이가 있다.

출토 유물

14기 가운데 13기의 무덤에서 부장품이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부장품이 비교적 많은 것은 M5·7·12이다. 다만 부장품의 종류와 수량은 차이가 없으며, 부장품은 도끼[斧]·창[矛]·칼[刀]·고리모양 석기[環狀石器] 등은 대다수 유골의 양측 또는 머리 부분 주위에 놓여 있다. 돌화살촉[石鏃]은 대다수 양측의 넓적다리뼈[腿骨]의 사이 또는 바깥쪽에 놓여 있으며, 토제 드리개[石墜]·석관(石管)·골관(骨管) 등의 장식품은 대다수 머리 부분 주위에서 나왔다. 다만 어떤 기물들은 상하층의 인골 사이 또는 인골 아래에서 나왔다.

출토된 유물은 석기는 391건, 토기 7건, 골기(骨器) 6건, 청동기 2건, 각종 장식품 140여 건이다. 이외에 무덤 구역에서 석기, 토기 등 17건이 채집되었다.

석기의 재질은 대다수 부근의 판암(板巖)·각암(角巖)·편마암(片麻巖)·섬장암(閃長巖)·감람암(橄欖巖) 등의 석재이며, 색깔과 광택은 회색·짙은 회색·회녹색·흑회색·자색 등이며, 흑요석 석기를 제외하고 모두 간석기[磨製石器]이다. 기형(器形)은 도끼[斧]·자귀[錛]·창[矛]·칼[刀]·과(戈)·화살촉[鏃] 및 고리모양 석기[環狀石器] 등이 있다.

토기는 모두 무늬가 없고[素面] 모래가 섞인 토기[夾砂陶]이며, 손으로 제작했으며[手製], 흑갈색·적갈색 등을 띠고 있으며, 안팎은 갈아서 매끄럽다. 기형은 비교적 단순하며 관(罐)·완(碗) 등이다.

골기는 모두 짐승의 지골(肢骨)로 제작하였으며, 기형은 창[矛]·추(錐)·대롱[筒] 등이다.

장식품은 비교적 많은데 청동제 단추(銅扣) 1건, 청동제 장식(銅飾) 1건, 멧돼지 어금니 장식[野猪牙飾] 16건, 녹송석관(綠松石管) 33건, 골관(骨管) 85건, 패환(貝環) 3건, 패주(貝珠) 1건, 취추(翠墜) 3건, 아주(牙珠) 1건, 조개껍데기(蚌殼) 2건, 짐승 어금니[獸牙] 3건 등이다.

현황

무덤 구역은 댐 건설로 인해 현재는 심하게 파괴되었다.

의의와 평가

청동기 시대 무덤의 하나로 거주지와 떨어져 전문적으로 조영된 공동 묘지이다. 무덤 형식과 매장 풍속 및 부장품 등에서 일정한 차이가 나타나는데 시간상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다.

금곡 말기 고분군의 대다수가 다인장이며, 동기(銅器)·석모(石矛)·고리모양 석기[環狀石器]·석과(石戈)·두형토기(豆形土器)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골검(骨劍)·타제 흑요석 석기 등의 기물이 비교적 적게 출토되었다. 이런 정황을 추정해 본다면 금곡 고분의 연대는 소영자 고분보다 늦고, 백초구 고분보다 이른 지금으로부터 3270±155년으로 중국의 청동기 시대에 해당한다.

금곡 말기 고분군은 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지만 명확한 차이는 드러나지 않으며 동일 시기의 공동 묘지로 정의된다.

참고문헌
  • 『龙井县文物志』(吉林省文物志编委会, 1984)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中國地圖出版社, 1993)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