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우산하 2112호 고분

한자 禹山下 2112號 古墳
중문 禹山下2112號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계단식 돌무지돌굴무덤
크기(높이 한 변의 길이 18.70m, 남은 높이 3.20m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6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4년
소재지 집안시 통구 고분군
정의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집안시(集安市) 일대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

개설

우산하 2112호 고분우산하 고분군 내에 있는 계단식 돌무지 돌굴무덤[계단 적석 석광묘(階段積石石壙墓)]이다. 축조 시기는 4∼5세기 대로 추정되고 있다.

위치

우산하 2112호 고분집안시통구 고분군(通溝古墳群)의 6개 권역 중 하나인 우산하 고분군(禹山下古墳群) 남쪽 가장자리의 넓고 평평한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주위에는 대형 봉토 석실분이 많은데, 고분의 남쪽으로 60m 떨어진 지점에 오회분 3호 고분오회분 4호 고분이 있으며, 동쪽으로 60m 떨어진 지점에는 사신총(四神塚)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우산하 2112호 고분은 1966년에 길림성 박물관과 집안현 문물보관소가 실측 조사하면서 우산하 2112호묘(禹山下2112號墓)[JYM2112]로 편호되었다. 1994년 집안시 박물관에서 집안 고구려 벽화 모의 전시실 건설 공사와 병행하여 조사를 한 바 있다.

형태

우산하 2112호 고분의 평면은 대체로 장방형으로 보이며, 계단은 총 4단이 축조되었다. 계단 석재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 계단 석재의 윗면 둘레에 너비 0.1m의 돌기를 만들고, 위에 놓인 돌을 돌기 안쪽으로 끼워서 층층마다 겹쳐 쌓았다. 재질은 가공된 석회암 혹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 계단 위에는 석광(石壙), 무덤 바깥길, 이실(耳室)[움푹 들어간 아치형 공간]이 축조되어 있는데, 석광은 평면이 장방형으로, 남북 길이는 6m, 동서 너비는 5m이다. 석광 네 벽은 훼손이 심하여 남아 있는 석재가 거의 없고, 바닥에 석판이 1층 남아 있을 뿐이다. 또 무덤 바깥길은 남벽 중간에 위치하는데, 무덤 바깥길 양측에 이실(耳室)이 있다. 무덤 바깥길의 방향은 151°, 길이는 4.60m, 너비 2.38m이다. 무덤 바깥길의 바닥에는 직경 0.2m의 강자갈이 깔려 있고, 작은 강자갈로 평평하지 않은 부분을 메운 상태이다. 무덤 바깥길의 양 벽은 모두 가공된 석회암을 어긋나게 하여 겹치지 않도록 첩첩이 쌓았는데, 3∼5층이 남아 있고, 높이는 0.9∼1m이다. 고분을 정리하기 전에 전체 무덤 바깥길과 이실 전체는 불규칙한 석재가 들어차 있는 상태였다. 이실은 모두 2개로, 무덤 바깥길 양측에 나누어 축조되었다. 북쪽으로 석광 남벽까지의 거리는 1.20m인데, 두 이실 바닥에는 직경 0.15∼0.20m의 강자갈이 깔려 있다.

출토 유물

우산하 2112호 고분에서는 총 35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대부분은 석광 내 서남쪽 모서리 부분에서 발견되었는데, 동쪽 이실에서는 환형(環形) 갈고리(挂鉤) 1점과 환형 배국(環形扒鋦) 2점이 나왔고, 서쪽 이실(耳室)에서는 환형 괘구(環形挂鉤) 1점이 출토되었다. 기와 등 건축 구조물은 대부분 석광 내부의 서쪽 면과 계단 바깥에서 출토되었다. 그 밖에 금동제 장식, 금동제 신발못, 금동제 못, 철제 꺽쇠, 철제 장막걸이쇠, 철제 관못이 출토되었다. 와당은 21건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연꽃무늬 와당이다.

현황

우산하 2112호 고분은 처음 조사할 당시 750㎡의 돌무지 상태로서 그 형태가 명확하지 않았다. 무덤 정상부는 울퉁불퉁하고 평평하지 않았으며, 석재 일부분은 없어지거나 고분 아래로 떨어져 있던 상태였다. 현재 고분의 정확한 방향도 확인하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우산하 2112호 고분은 우산 남쪽 비탈의 끝부분에 위치하며, 주위에 오회분·사신총 등 대형 흙무지 돌방무덤이 많이 분포한다. 통구 고분군의 분포 정황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고분들은 산비탈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배열되었는데, 비탈 위의 연접한 돌무지무덤들은 축조 연대가 비교적 이르며, 산 아래의 무덤은 대부분 독립된 형태의 흙무지 돌방무덤으로서 비교적 뒷 시기에 축조된 것들이다. 우산하 2112호 고분의 축조 연대는 주변의 고분들과 서로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돌무지무덤에 부장된 유물들은 대부분 실용품이지만, 4세기말 전후에는 장식성 기물이 증가하고, 5세기말 이후에는 장식성 기물이 매우 보편적이 되는 경향을 보인다. 우산하 2112호 고분은 금·은·금동 장식품이 대량 출토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4세기 이후의 고분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편 돌무지 돌굴무덤은 고구려 고유의 묘제로, 통구 고분군의 돌무지무덤 가운데 다수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매장부에 하나의 석광만 만들었거나 혹은 무덤 바깥길과 석상(石箱)이 축조된 경우, 이실(耳室)이 축조된 경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실이 있는 무덤이 상대적으로 늦은 형태로서 우산하 2112호 고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실이 있는 돌무지 돌굴무덤은 통구 고분군에서 많이 발견되지 않으며, 그 연대는 일반적으로 4∼5세기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 永島暉臣慎, 「集安の高句麗遺跡」(『好太王碑と集安の壁画古墳』, 吉川弘文館, 1988)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高句麗王陵』(集安縣博物館, 2004)
  • 동북아역사재단 편, 『중국 소재 고구려 유적·유물Ⅱ-집안 통구분지편』(진안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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