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산성하 1407호 고분

한자 山城下 1407號 古墳
중문 山城下1407号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봉토석실벽화분
크기(높이 4.5m
지름) 22m
소재지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산성하묘구
정의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통구 고분군(通溝古墳群)산성하 고분군(山城下古墳群)에 있는 고구려 시기 봉토 석실 벽화분.

위치

산성하 1407호 고분은 중국길림성 집안시 삼도하자(三道河子) 동쪽 기슭의 충적 평원지대, 산성하 고분군 북쪽 지역에 자리한다. 산성하 고분군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성하 일대를 전체적으로 보면 서쪽에 있다. 고분의 동쪽에는 산성하 1405호 고분이, 서남쪽에는 산성하 1408호 고분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65년에 길림성 문물보관회, 길림성 박물관이 실측 작업을 진행하였다. 1993년에는 국가 문물국 비준으로 통구 고분군에 대한 비교적 큰 규모의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다.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 집안시 박물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번 조사에서는 산성하 고분군에서는 6기, 우산하 고분군에서는 1기의 벽화 고분이 새로 발견되었다. 산성하 1407호 고분 역시 당시 발견된 고분 중 하나이다.

이 시기 조사를 통해 고분의 내부 구조가 곁방이 달린 널길과 널방으로 이루어진 구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고분 내부와 외부에 대한 조사, 수리가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채색 벽화 조각이 다량 발견되어 벽화 고분임이 확인되었다. 1997년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 집안시 박물관 주도로 통구 고분군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이 때 산성하 1407호 고분에 대한 재조사와 실측, 보고 작업도 함께 진행되었다.

형태

고분의 외형은 밑이 네모진 상태에서 올라가다가 끝이 잘린 듯 마무리된 방대형이다. 규모는 한 변의 길이가 22m이며 높이는 4.5m가량이다. 내부는 두 개의 곁방이 달린 널길에 널방이 있는 외방 구조로 되어 있다. 고분의 입구는 서쪽으로 나 있으나 고분으로 들어가는 길은 이미 파손되었다. 남은 부분의 길이는 2m, 너비 1m, 높이 1.2m정도이다. 널길의 크기는 길이 1.9m, 너비 1.3m, 높이 1.2m 정도로 파악된다. 널길 양쪽에 붙어 있는 곁방의 크기는 길이 1.6m, 너비 1m, 높이 1.2m이다. 널방은 방형으로 규모는 길이 5.1m에 너비가 5.35m이다. 천정은 조사 당시 널방의 천장 고임이 훼손되어 평행 고임 일부만 남아 있다. 널방의 남은 높이는 2m가량이다.

벽에는 회를 입히고 그 위에 벽화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조사 당시 벽에서 떨어진 백회가 다량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바닥에 떨어진 백회 잔편에서 홍색, 자색, 묵색, 녹색의 채색 벽화 조각이 발견되었다. 이로서 벽화 고분임을 알게 되었다. 무덤 구조로 보아 벽화의 주제는 생활 풍속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의의와 평가

집안 지역의 고분 중 벽화 고분은 그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때문에 하나하나가 분석을 위한 좋은 자료가 된다. 산성하 1407호 고분의 경우도 집안 지역 벽화분의 경향을 분석하는 데 하나의 예가 된다.

고분의 편년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우선 전호태의 경우 고분의 형식이 봉토 석실분인 점, 벽화 등을 고려하여 5세기 전반에 조영되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한편 방기동, 유훤당은 집안에서 발견된 벽화 고분의 편년과 관련해 4기로 구분하였다. 그 중 1기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외방 구조이며, 둘째 널길 양쪽에 곁방이 달린 것, 셋째 널방의 천정 구조는 궁륭식[穹窿式, 아치형] 혹은 고임식, 조정식이며, 넷째 묘향은 서향(西向), 다섯째 벽화의 내용은 생활 풍속이나 왕자(王字), 혹은 연화문 장식, 혹은 널방 모서리에 나무 구조물을 그려 넣을 것 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1기의 전형적인 벽화 고분으로 마선구 1호 고분, 통구 12호 고분, 산성하 332호 고분, 장천 1호 고분 등을 제시하였다. 산성하 1407호 고분도 여기에 포함시킴으로써 고분의 편년을 4세기 중엽∼말엽으로 보았다. 경철화의 경우 5세기 중엽∼6세기 초로 편년하였으며, 손인걸·지용은 5세기 초반∼5세기 후반으로 보았다.

참고문헌
  • 전호태, 「고구려 집안권 벽화고분의 현황과 과제」(『울산사학』 14, 울산사학회, 2009)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編著, 『洞泃古墓群』(科學出版社, 2002)
  • 孙仁杰·迟勇, 『集安高句麗墓葬』(香港亞洲出版社, 2007)
  • 耿鐵華, 『高句麗 古墓壁畵 硏究』(吉林大學出版社, 2008)
  • 方起東·劉萱堂, 「集安下解放第31号高句丽壁画墓」(『北方文物』 2002-3, 北方文物雜誌社,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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