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천추총

한자 千秋塚
중문 千秋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마선향 마선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계단식 돌무지돌방무덤
크기(높이 동쪽 높이 7.9m, 남쪽 높이 10.8m, 서쪽 높이 10.9m, 북쪽 높이 8.6m.
지름) 동변 길이 67m, 남변 길이 60.5m, 서변 길이 62.6m, 북변 길이 71m
관리자 집안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09~1910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13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35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36년 9월 30일~10월 4일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6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0년대 초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봄
훼손 시기/일시 1909년 이전
소재지 집안시 마선향 마선촌 2조N : 41°5′37.18″E : 126°8′44.12″
정의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 마선향(麻線鄕) 마선촌(麻線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

개설

천추총통구 고분군(通溝古墳群)의 6개 권역 중 하나인 마선구 고분군(麻線溝古墳群) 내에 있는 무덤이다. ‘영락(永樂)’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출토되어 광개토왕(廣開土王) 이후의 왕의 무덤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위치

천추총은 집안시구(集安市區)에서 서쪽으로 약 3.5㎞ 떨어진 마선하(麻線河) 동쪽 언덕에 위치한다. 지세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데, 가장 낮은 서변의 해발 고도는 180.83m이다. 주변에는 동북쪽으로 약 1㎞ 떨어진 지점에 마선구 2378호 고분이 있으며, 북쪽으로 약 800m 떨어진 지점에 마선구 2100호 고분, 서쪽으로 약 2㎞ 떨어진 지점에 서대총(西大塚)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35년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하마다 고사쿠[浜田耕作],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 미카미 쓰구오[三上次男]에 의해 조사된 바에 따르면, 천추총고분에는 호석이 2∼3개가 세워져 있었으며, 정상부는 이미 함몰된 상태였고, 돌이 남쪽으로 흘러내리면서 널길 입구가 노출된 상태였다고 한다. 또한 무덤 서북쪽의 도로 좌측에 있던 민가에 거대한 화강암 초석이 있었는데, 그 형태는 팔각형이고 꽤 정교하여였다고 전한다. 이 민가의 남쪽, 즉 무덤의 서쪽 일대의 낮은 지역에 강돌이 펼쳐져 있었고, 건축 유지가 있었다고 한다.

1966년에 길림성 박물관과 집안현 문물보관소가 통구 고분군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마선구 제1000호묘[JMM 1000]로 지정하고, 1980년대의 조사 과정에서 고구려 왕릉으로 비정하였다. 2003년에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와 집안시 문물보관소 등은 천추총 주변에 대해 실측 및 무덤 일부분에 대한 정리 작업을 하였는데, 이 조사는 조사 및 실측이 주가 되었으나, 동시에 환경 정비 및 보호 조치 등도 시행하였다. 흘러내린 돌들을 정리하면서 발견된 유물 등을 최대한 수집하였고, 작업 과정과 고고 현상을 모두 기록한 뒤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때 1100여 점의 유물들을 수집하였고, 지질 상황·고분 형태·고고학적 현상·주변 능역 시설 등을 확인하였다.

형태

천추총은 계단식 돌무지 돌방무덤[적석 석실분]으로서 현재 남아 있는 기단석의 위치를 통해 각 변의 길이를 실측해 보면, 동변 67m, 남변 60.5m, 서변 62.6m, 북변 71m이다. 고분의 평면을 정방형으로 가정하면, 한 변 길이는 대략 63m로 추정된다. 고분의 남아 있는 높이를 측량할 때, 각 변의 중심점을 기점으로 측량해 보면, 동쪽 높이는 7.9m, 남쪽 높이는 10.8m, 서쪽 높이는 10.9m, 북쪽 높이는 8.6m이다. 무덤 바깥길이 향한 서변을 기점으로 할 때, 잔존 높이는 약 11m이다.

무덤은 먼저 지표면을 단단하게 다지고 커다란 돌로 기단을 만든 뒤 기단 내부를 돌로 채우는 방식을 통해 여러 층을 쌓아 올렸다. 계단을 쌓는 데 사용되는 돌은 다듬은 흔적이 보이지 않도록 잘 가공하였고, 둘레에 홈을 만들어서 위쪽에 얹은 돌이 밀려나지 않도록 하였다. 서측은 무덤 위에서 흘러내린 돌들이 덮고 있어서 서남쪽 모서리의 5층 계단만 볼 수 있으며, 남측은 흘러내린 돌들과 장대석이 같이 섞여서 덮여 있는 상태이다. 주검을 안치하였던 구조물은 파괴되어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무덤의 윗부분이 편평하며, 정상부에 비교적 거칠게 가공된 석재 2개가 남북 방향으로 놓여 있는데 이는 돌덧널의 일부로 추정된다. 또 고분 정상부의 중앙에 강자갈[하란석(河卵石)]이 쌓인 곳은 무덤칸 바닥을 보여주는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유사한 구조인 태왕릉장군총에서도 모두 무덤칸이 존재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천추총에도 무덤칸 내에 부부를 합장하였던 돌덧널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무덤 정상부에는 목조 구조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구조물은 고구려 왕릉의 표상으로 해석된다. 무덤 둘레에 거대한 화강암 호석을 놓았는데, 원래는 한 변에 5매씩 총 20매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2층 계단의 정면에는 얇은 판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중국측 보고서에서는 제사나 상징의 의미가 있던 것으로 보았다.

그 밖에 무덤에서 40m 떨어진 곳에서 능원(陵園)과 관련한 담 유적이 발견되었다. 담은 양쪽에서 돌을 쌓아 올린 형태이며, 아래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져서 단면은 사다리꼴이 된다. 한편 무덤의 서남쪽으로 300m 떨어진 능원 밖에서 산돌과 강돌로 축조한 담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제사 건축지로 추정되고 있다.

출토 유물

2003년도 조사 당시 금실과 금제 장식구, 금동 못과 갑옷편, 청동 방울, 철제 칼과 철제 고리, 철제 갑옷과 철제 꺽쇠가 발견되었다. 또 무덤이 무너지면서 무덤 위에 있던 많은 기와들이 파괴되어 무덤 위와 주변에 흩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나온 기와 무지들은 약 9㎡에 이르며 원래 수량은 이보다 두 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기와는 암키와·수키와·당수와(擋水瓦) 등 약 100여 점이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미재영락(未在永樂)’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편도 수습되었는데, 영락(永樂) 연간[391∼412]에 미(未)가 들어간 해는 을미(乙未)[395년]와 정미(丁未)[407년]가 있어서, 천추총의 연대를 파악하는 데 주된 단서가 된다. 또 새털구름 무늬[권운문(卷雲文)]과 연꽃무늬가 그려진 와당 조각도 수습되었다. 연꽃무늬 와당은 태왕릉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형태이다.

또한 이때 글자가 씌여진 명문 벽돌 300여 점이 수집되었다. 대부분 서변과 남변의 흘러내린 돌무지 중에서 수집되었는데 ‘천추만세영고(千秋萬歲永固)’와 ‘보고건곤상필(保固乾坤相畢)’ 등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두 명문 벽돌은 모두 길고 네모난 판 모양이고, 긴 측면에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

현황

천추총의 계단석은 마을과 가까이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이 왕래하면서 심하게 파괴되었다. 무덤 위에 있던 돌들도 구덩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고, 주민들이 다른 용도로 운반해 가기도 하였다. 무덤 동쪽 장대석 돌무지 또한 유실된 상태였다.

의의와 평가

천추총서대총·마선구 2100호 고분·우산하 992호 고분 등의 계단식 돌무지 돌방무덤과 비교해 볼 때, 무덤칸이 축조된 것으로 미루어 한 단계 진전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태왕릉(太王陵)장군총(將軍塚) 등과 비교하였을 때, 천추총의 계단석은 그 가공이 약간 조잡하고, 묘역 포석과 능원이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계단식 돌무지 돌방무덤 가운데서도 비교적 초기 형태로 생각된다. 천추총은 무덤의 입지·규모·구조와 능원 시설 등을 볼 때 왕릉임에는 이견이 없는데, 무덤의 주인공으로는 미천왕(美川王)·고국원왕(故國原王)·소수림왕(小獸林王)·고국양왕(故國壤王) 등이 비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集安高句丽王陵-1990~2003年集安高句麗王陵調査報告-』(文物出版社, 2004)
  • 동북아역사제단 편, 『고구려 유적의 어제와 오늘 2-고분과 유물-』(동북아역사재단, 2009)
  • 동북아역사재단 편, 『(DVD)중국 소재 고구려 유적·유물Ⅱ-집안 통구분지편』(진안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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