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강총

한자 臨江塚
중문 臨江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왕진 과수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대형 계단식 돌무지돌굴무덤
크기 전체 규모: 남북 길이 76m, 동서 길이 71, 높이 약 10m정상부: 길이 20m, 너비 18m정상부 중앙의 구덩이: 길이 17m, 너비 10m, 깊이 2m
조성 시기/일시 3세기 전반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09~1910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37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6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3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소재지 중국 길림성 집안시 태왕진 과수촌N : 41° 8′ 39.4″E : 126° 13′ 4.65″
출토 유물 소장처 길림성 집안시 영빈로 249호
정의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우산하(禹山下) 지역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

개설

임강총통구 고분군(通溝古墳群)의 6개 권역 중 하나인 우산하 고분군(禹山下古墳群) 내에 있는 무덤이다. 3세기 전반 무렵의 고구려 왕릉으로 보이며, 제11대 동천왕(東川王)의 무덤으로 비정되고 있다.

위치

임강총집안시 동쪽 끝에 위치한다. 중심 지리 좌표는 동경 126° 13′ 4.65″, 북위 41° 8′ 39.4″이다. 용산 서남쪽 기슭의 작은 산 위에 자리하며, 거의 산 정상부 전체를 독차지하고 있다. 임강총 북쪽으로 산 아래가 태왕진(太王鎭) 과수촌(果樹村) 9조(九組)이다. 임강총 동쪽으로는 구릉이 계속되고, 남쪽은 단애(斷崖)이다. 임강총광개토왕비(廣開土大王碑) 사이의 거리는 460m, 임강총태왕릉(太王陵) 사이의 거리는 900m 정도이다. 임강총 서쪽 산비탈 중부에는 고구려 시대의 소형 돌무지무덤이 여러 기 있다. 서쪽으로 약 4㎞ 떨어진 곳에 시(市)가 있으며, 남쪽으로 약 800m 떨어진 곳에 압록강이 흐른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09년 야쓰이 사이이치[谷井濟一]와 구리야마 슌이치[栗山俊一]가 조사한 이래, 1937년에는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구로다 겐지[黑田源次],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 미카미 쓰구오[三上次男] 등이 집안의 도성 및 중요 고분군들을 조사하였는데, 이때 임강총도 조사되었다. 1966년 길림성 박물관과 집안현 문물보관소의 통구 고분군 실측 조사 때 우산 묘구(禹山墓區) 43호 고분[JYM0043]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1983년에도 집안시 박물관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2003년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 주도로 구체적인 조사가 진행되어, 9개의 탐색갱을 넣어 무덤 주위를 조사함과 아울러, 분구의 부분 단면 조사를 진행하였다. 또 무덤 동쪽의 제대(祭臺)[제단] 유적을 정리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50여 기의 금기, 동기, 철기, 도기, 기와 등을 수습하였다. 2004년 장복유(張福有)·손인걸(孫仁杰)·지용(遲勇) 등이 집안 경내의 고구려 유적을 전면 재조사할 때도 그 대상이 되었다.

형태

임강총은 대형 계단식 돌무지돌광무덤[적석 광실묘]로 남북 길이 76m, 동서 길이 71, 높이 약 10m이다. 외형은 원각방구(圓角方丘) 형태, 즉 가장자리가 동그란 네모 모양이다. 기본적으로 가공된 큰 장대석은 없고, 규칙적인 무덤 기초석도 발견되지 않았다. 무덤 정상부는 비교적 평평하고 형태는 길이 20m, 너비 18m의 정방형이다. 중간에 있는 큰 구덩이는 길이 17m, 너비 10m, 깊이 2m인데, 안팎에서 정연한 장대석이나 가공된 큰 판석이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매장부는 구조가 간단하고 천정석이 없는 굴방[광실(壙室)] 구조로 추정된다.

무덤의 각 변과 계단은 모두 비교적 큰 산자갈로 축조하였으며, 석재는 대부분 가공하지 않았고 불규칙적으로 쌓았다. 산의 지세가 같지 않아 무덤의 사면에 축조된 계단의 수도 같지 않다. 동남각과 서남각은 21~23층으로 판단되고, 지세가 상대적으로 낮은 북면은 30~33층으로 추정된다.

무덤 동쪽 약 13.5m 지점에는 무덤과 평행하는 제대(祭臺)가 남아 있다. 제대는 길이 50m, 너비 5~9m의 장방형으로 높이는 0.3~0.5m 정도이다. 제대 표면의 남부와 중부에는 매우 큰 검은 흙덩이가 3개 있는데, 불에 탄 흔적과 유사하며, 그 위에서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

임강총의 정상에서 대량의 수키와·암키와, 소량의 등성마루기와[척와(脊瓦)] 잔편이 발견되었고, 봉석 위에도 비교적 많은 잔와(殘瓦) 등이 발견되는 등 정상부에서 기와가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탐색갱과 제대에서 출토된 유물은 단지·도병(陶甁)·철촉·철정 등의 생활용품이 주를 이루었다.

제대 표면의 남부와 중부에 있는 3개의 검은 흙덩이 위에서도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제1 검은 흙덩이에서는 돌끌[석착(石鑿)], 도제 가락바퀴[도방륜(陶紡輪)], 도기 뚜껑[도기개(陶器蓋)] 등이, 제2 검은 흙덩이에서는 단지, 도기 구연부, 마노구슬, 석관(石管), 동제 팔찌, 금동 장식편 등이, 제3 검은 흙덩이에서는 철기, 마노구슬이 출토되었다. 또 제대 북부에서 서변으로 18m 떨어진 지점의 돌 사이에서는 사람 형태의 수레바퀴비녀장[인형거할(人形車轄)]과 금권(金圈)이 출토되었다.

현황

임강총은 일찍이 도굴을 당해 매장부는 파괴되었으며, 방치된 돌들이 무덤 서쪽 중앙부 바깥으로 6m 정도 쌓여 있다.

의의와 평가

임강총은 길이와 너비가 모두 70m를 넘는 초대형 돌무지무덤으로, 강이 보이는 산 정상에 홀로 자리하고 있다. 또 제대가 있으며,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기 때문에, 고구려 왕릉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임강총의 계단은 낮고 구조는 단출하며, 석재는 자연석으로 가공된 장대석이나 괴석(塊石)이 보이지 않는다. 비교적 원시적인 계단의 특징을 보여주며, 이른 시기에 조성된 고구려 왕릉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제11대 동천왕[재위 227~248]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첫째, 임강총은 초기 계단식 돌무지무덤으로서 이전 시기에 조성된 계장식 돌무지무덤의 요소를 많이 갖추었다는 점, 둘째, 집안 분지 동쪽에 위치한다는 점, 셋째, 태왕향 일대를 흐르는 소하천이 고구려 시대의 동천(東川)에 비정되며 여기서 임강총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는 점, 넷째, 축조 연대가 3세기 말을 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다. 이러한 추론을 통해 동천지원(東川之原) 즉 동양(東壤)에 조성되었다는 동천왕의 무덤으로 여겨지며, 임강총을 통해 3세기 전반 고구려 왕릉의 단면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集安高句麗王陵』(文物出版社, 2004)
  • 여호규, 「집안지역 고구려 초대형적석묘의 전개과정과 피장자문제」(『한국고대사연구』41, 한국고대사학회, 2006)
  • 孫仁杰·遲勇 지음, 동북아역사재단 번역, 『집안 고구려 고분』(동북아역사재단, 2007)
  • 동북아역사재단 편, 『중국 소재 고구려 유적·유물Ⅱ-집안 통구분지편』(진안진, 2008)
  • 임기환, 「고구려의 장지명 왕호와 왕릉 비정」(『고구려 왕릉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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