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산 고분군

한자 七星山 古墳群
중문 七星山墓区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지름) 고분군 전체 너비 99.17㏊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1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6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8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5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6년∼1984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4월∼6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5년
소재지 집안시 서쪽 통구하
정의

길림성 집안시칠성산 동쪽 기슭에 있는 고구려 고분군.

개설

칠성산 고분군은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칠성산에 위치하며, 통구 고분군(通溝古墳群)을 이루는 6개 고분군 중 하나이다. 2005년 조사를 기준으로 하면 칠성산 고분군에는 1,638기의 고구려고분이 남아 있다.

위치

칠성산 고분군은 집안시 성구(城區) 서쪽, 통구하(通溝河) 건너에 있는 칠성산 자락에 위치한다. 칠성산 자락에서 이어져 아래 통구하 인근까지 고구려고분이 줄지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통구 고분군은 명·청 시대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청나라 광서(光緖) 연간에 광개토왕비 및 탁본이 알려지면서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많은 학자들이 집안을 찾았다. 1930년대부터 일본 학자들이 일부 고분에 대한 조사, 정리, 도면 작업, 기록 등을 진행하였고 높은 수준의 보고서와 저작들을 발표하였다.

1950년대에는 중국에 의한 통구 고분군 조사가 시작되었고, 1961년 통구 고분군과 호태왕비는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全國重點文物保護單位)로 공포되었다. 1956년부터 이듬해인 1966년까지는 고분군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 도면 그리기, 기록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때 통구 고묘군의 묘장들을 1/2000 도면에 표시하고 완전한 한 세트의 보고서를 완성하였다. 제1차 조사 때 공포된 통구 고묘군의 고분 총수는 11,300기이다.

1966년에는 길림성 문물관리위원회(吉林省文物管理委員會)가 운봉 저수지 측량대에 요청해 통구 고분군의 측량, 도면 작업, 편호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1966년 실측 통구 고묘군도지 색인(1966年實測洞泃古墓群圖紙索引)』이다. 이때 확인된 고구려고분은 통구 고분군 전체에서 11,257기이며, 그 중 칠성산 묘구(七星山墓區)에서는 1,708기가 확인되었다.

1968년에 진상위(陳上偉), 이문규(李文奎), 관영상(官永祥) 등이 여러 기의 고분을 발굴하였는데 우산하 고분군 176기, 만보정 고분군 45기, 산성하 고분군 36기, 마선구 고분군 12기와 더불어 칠성산 고분군에서도 57기를 발굴하였다. 1975년에는 집안현 문물관소(集安縣文物管所)가 칠성산 1096호 고분에 대한 발굴을 진행하였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길림성 박물관과 집안현 고고 학습반이 우산하 고분군 57기, 산성하 고분군 37기, 마선구 고분군 69와 함께 칠성산 고분군에서도 26기를 새로 발굴하였다.

1993년에는 다시 통구 고묘군의 주요 51개 대형 고분을 중심으로 보수 작업을 진행하였다. 1997년 4월부터 6월까지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와 집안현 박물관이 통구 고분군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를 실시하였다. 1997년 조사를 통해 통구 고분군 전체에서는 10,782기의 고구려고분이 확인되었고 칠성산 고분군에서는 1,570기가 확인되었다. 2004년 7월 1일에는 고구려 산성과 주요 고분이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이후 통구 고분군 산하 각 고분군에 표지비를 세우고 고분에는 번호와 경계를 표시하는 표지판을 세웠다. 아울러 보호 범위와 건설 금지 구역을 획정하였다. 2005년에는 집안시 문물국에서 통구 고분군에 대한 새로운 실측, 기록, 촬영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 조사를 통해 칠성산 고분군에서는 총 1,638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형태

칠성산 고분군은 고분의 분포에 따라 다시 목이장구(木耳場溝), 양계장구(養鷄場溝), 원보산구(元寶山溝), 노우대파구(老友大坡溝) 등 네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구역의 고분들은 대부분 산비탈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배열되어 있다. 칠성산 고분군에서 보이는 고분 분포의 특징은 여러 고분이 줄을 지어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고분의 분포는 각 고분의 피장자가 혈연 집단을 구성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출토 유물

칠성산 고분군에서 유물이 출토된 고분은 871호 고분, 879호 고분, 96호 고분, 211호 고분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칠성산 871호 고분은 왕릉에 비정되고 있으나 일찍이 도굴을 당하여 남아 있는 유물이 많지 않다. 고분에서는 철 화살촉, 찰갑 그리고 기와편 등이 발견되었다.

1점 출토된 보요(步搖) 장식은 보요에 매다는 작은 장식으로 보인다. 둥글고 얇은 금동 판 형태이며 윗부분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직경은 2.7㎝, 두께는 0.1㎝이며 구멍의 직경은 0.15㎝이다. 금동제 장식은 2점이 나왔는데 장방형의 얇은 금동 판으로 둘 다 모양은 비슷하다. 양쪽에 작은 구멍들이 많이 뚫려 있고 가운데 그보다는 큰 구멍 두 개가 뚫려있다. 금동 판의 길이는 각각 6㎝와 5.5㎝이며 두께는 3.1㎝로 같다. 구멍의 직경은 0.3㎝이다.

1점 출토된 찰갑은 장방형이며 찰갑을 옷에 붙일 수 있도록 두 개의 구멍이 나 있다. 크기는 길이가 3.9m, 너비가 3.7m이며 구멍의 직경은 0.2㎝∼0.4㎝이다. 철 화살촉은 편평하며 뾰족하기가 규형(圭形)에 가깝다. 길이는 1.8㎝, 너비는 0.8㎝, 두께는 0.12㎝이다. 철제 칼장식(鏢)은 사각 송곳 형태이며 아랫부분 일정 구간은 속이 비어 있다. 전체 길이는 7㎝, 직경은 1.1㎝이다. 기와편은 다수가 출토되었으며 대부분이 회색이고 홍색 혹은 갈색이 일부 섞여있다. 암키와의 배면에는 승문(繩文)이 있고, 내면에서는 포문(布文)이 있다. 일부 기와에서는 손가락으로 무늬를 낸 흔적을 볼 수 있다. 수키와 역시 안쪽에 포문(布文)이 있다.

한편 칠성산 211호 고분은 고분의 규모가 크고 주변에 다른 무덤이 없어 왕릉에 비정된다. 일찍이 도굴을 당하였음에도 금동 장식품, 철제 못, 동진 시대 자기, 채색 도기 조각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금동 장식품은 황금백색으로 보요 장식과 장식을 연결하는 가지가 대부분이다. 이마 장식, 관 장식도 포함되어 있다. 18점이 출토된 사엽형(四葉形) 투조 장식은 네 잎을 대칭으로 붙인 장식이며 매우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얇은 동판을 잘라 만들었고 전체 모양은 정방형에 가깝다. 4개의 잎에는 심엽형 무늬가 투조되어 있으며 보요가 하나씩 달려 있다. 보요 장식은 총 29점으로 얇은 동판을 잘라 만들었으며 형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원형이며 다른 하나는 홀과 같이 한쪽 끝이 뾰족한 규형(圭形)이다. 원형 보요는 장식품에 매달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으며 큰 것과 작은 것 두 종류가 있다. 규형(圭形) 보요는 홀과는 반대로 아랫부분이 뾰족하다. 윗부분은 둥글게 볼록 튀어나왔으며 거기에 보요를 매달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포형(泡形) 장식 역시 2점이며 얇은 동판을 원형으로 잘라 만들었고, 가운데 부분이 불룩 올라와 있다. 가장자리에 작은 점이 두 줄로 있으며 역시 보요를 달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동기(銅器)로는 장막걸이와 못이 있다. 장막걸이는 꼭지 부분만 남아 있다. 담금질하여 제작하였으며 구부러지는 곳에서 끊어졌다. 남은 길이는 3㎝이다. 못의 대가리는 원형이고 몸통은 방형이다. 길이가 다양하여 길이 9㎝ 인 것이 1점, 5∼6㎝인 것은 14점, 3∼4㎝인 것이 12점, 2∼3㎝인 것이 12점, 1㎝ 이하의 못은 2점이 출토되었다. 못 대가리에 도금의 흔적이 보이는 것이 최소한 1점 이상이며 원래 상당수가 도금된 것으로 보인다.

철기로는 찰갑편이 1점, 못 5점이 출토되었다. 찰갑편은 쇠를 단련하여 만들었으며 옆에서 보면 활처럼 약간 굽어 있다. 찰갑을 옷에 붙이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못은 대가리와 몸통 모두 원형이다. 2점은 도금을 하였다.

토기는 조각으로만 남아 있어 토기의 형태는 파악할 수 없다. 회백색의 태토에 청록색 시유를 한 것으로 진대(晋代)의 자기로 보인다. 기와편은 수키와에 비해 암키와의 수가 많다. 회색 기와가 대부분이며 홍갈색이 일부 있다. 수키와는 일부에만 새끼줄 무늬[승문(繩文)]가 있다. 암키와의 내면에는 모두 포문(布文)이 있다. 배면에는 원래 무늬가 없으나 일부에서는 바둑판무늬[격자문(格子文)], 손으로 누른 자국[지두문(指頭紋)], 바구니로 누른 자국[남문(籃文)], 새끼줄 무늬 등이 발견된다.

현황

칠성산 고분군을 비롯한 통구 고분군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실측,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누락 혹은 중복의 가능성이 있고 고분의 상황도 달라지므로 각 조사마다 고분의 수가 다르다. 칠성산 고분군의 조사 현황은 다음과 같다.

1966년의 조사 보고인 『1966년 실측 통구 고묘군도지 색인』에 따르면 칠성산 고분군에서는 총 1,708기의 고구려고분이 확인되었다. 1997년도 실측 보고서인 『통구 고묘군(洞泃古墓群)』에서는 총 1,570기로 파악하여 고분의 수가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2005년도 재조사에서는 다시 1,638기로 확인되었다.

1997년도 『통구 고분 실측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확인된 1,570여 기 고분 중 44%에 달하는 688기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고 882기만이 현재 전해진다. 그 중 52%에 달하는 462기가 적석총이며 기단 봉토 석실분과 봉토분은 13기, 나머지 307기는 소형 동실묘이다.

의의와 평가

칠성산 고분군은 그 면적은 99.17㏊에 이르는 대단위 고분군으로 통구 고분군 중에서도 우산하 고분군, 마선구 고분군, 산성하 고분군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특히 칠성산 211호 고분, 871호 고분은 왕릉급으로 파악되고 있다. 칠성산 고분군국내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입지여서 왕릉으로는 좋은 위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후기 고분으로 분류되는 대형 봉토 석실묘나 봉토 석실 벽화묘는 보고된 예가 없으며 출토된 기와의 문양이나 제작 기법이 초기 고구려 유적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른 시기에 조성된 고구려 고분군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길림성 문물지 편찬 위원회, 『집안현 문물지』1984
  • 손인걸·지용, 『집안 고구려 묘장』(홍콩 아세아 출판사, 2007)
  •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집안시 박물관 편저,『통구 고묘군』(과학 출판사, 2002)
  •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집안시 박물관 편저,『집안 고구려 왕릉』(문물 출판사, 2004)
  • 고구려 연구 재단 편,『위성 사진으로 보는 고구려 도성』(고구려 연구 재단, 2005)
  • 강현숙·백종오·여호규 외, 『중국 소재 고구려 유적·유물 2-집안 통구 분지편』(동북아 역사 재단, 2011)
  • 동북아 재단 디지털 고구려 박물관(http://mgogury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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