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해방 고분군

한자 下解放 古墳群
중문 下解放墓区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왕진 하해방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35년~1936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3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3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6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8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3년
소재지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양향 하해방촌
정의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집안시(集安市) 태왕향(太王鄕) 하해방촌(下解放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군.

개설

하해방 고분군통구 고분군(通溝古墳群) 중에 가장 북쪽에 있는 고분군으로, 현재 30여 기가 남아 있다. 이 가운데 모두루총(牟頭婁塚)환문총(環文塚)이 대표적이다.

위치

하해방 고분군은 하해방촌의 용산(龍山) 남쪽 기슭과 평원에 있다. 압록강 중류 평안북도 만포진에 마주 보이는 지역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환문총은 1935년 일본 학자가 조사했다.

형태

하해방 고분군 가운데 규모가 큰 무덤이 2기가 있는데, 북쪽의 것이 모두루총이고, 다른 하나는 환문총이다. 모두루총은 흙무지 돌방무덤[봉토 석실분(封土石室墳)]으로, 외형은 위쪽이 평평하고 네모진 모양[절두방추형(截頭方錐形)]이다. 높이 약 3.32m이고, 밑변의 한변 길이가 18m 이상이 된다. 무덤 내부는 널길, 앞방, 무덤길, 널방으로 이루어진 두방 무덤이다. 벽화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고, 앞방 북벽 상부에 묵서명이 적혀 있다. 제수(題首) 2행과 매행 10자인 79행의 본문으로 이루어져 모두 800여 자에 이르지만, 현재 판독할 수 있는 글자는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광개토왕(廣開土王)의 노객 곧 신하인 모두루(牟頭婁)의 존재와 5세기 전반의 고구려 역사적 상황과 여러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하해방 고분군 북쪽 산록의 경사면에 여러 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무덤이 환문총이다. 흙무지 돌방무덤으로 외형은 절두방추형이다. 봉토의 높이는 3m, 둘레 80m이다. 무덤 내부는 널길과 널방으로 이루어진 외방 무덤이다. 널길에는 양 옆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수가 한 마리씩 그려져 있다. 널방에는 기둥과 들보가 그려져 있고, 벽면에 동심원문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동심원문이 있다는 점 때문에 무덤의 이름이 환문총이라 명명되었다. 동심원문은 정면형의 연화문(蓮花文)을 간략하게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5세기에 조성된 연화문의 장식 문양도 벽화 고분이다.

의의와 평가

하해방 고분군은 돌무지무덤이 없이 흙무지무덤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통구 고분군 중에서 가장 늦게 조성된 고분군이다. 고분 대부분은 구릉의 사면에 위치하며, 평지에는 모두루총이 자리한다. 하해방 고분군 중 대형 무덤은 대략 5세기 전반에 조성된 모두루총·하해방 31호 고분·환문총 등이 있다. 하해방 고분군 가운데 4세기대에 조성된 고분이 있을 가능성은 적다.

참고문헌
  • 이형구·조유전·윤세영·차용걸, 『고구려의 고고 문물』(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 1996)
  • 전호태,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사계절, 2000)
  • 정병모, 「환문총 벽화에 그려진 동심원문의 상징과 그 의의」(『선사와 고대』 23, 한국 고대 학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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