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장 관애

한자 老邊墻 關隘
중문 老挝边墙关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양수조선족향 해관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성곽
양식 관애
크기(높이 1~2m
길이 170m(200m)
현 소재지 길림성 통화 집안시 양수향 해관촌N : 40°55'29.70"E : 125°49'53.00"
정의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 양수향(凉水鄕) 해관촌(海關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관애(關隘).

개설

노변장 관애고구려의 도성인 국내성으로 통하는 압록강 수로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토석 혼축으로 축조된 군사 시설이다.

건립 경위

노변장 관애는 환인(桓仁)에서 집안으로 도달할 수 있는 교통로 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근에 칠개정자 관애가 위치하고 있고, 관애 주변으로 고구려 돌무지무덤이 여러 기 확인되고 있는 점을 볼 때, 당시 도성이었던 국내성을 방어하기 위해 고구려가 축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노변장 관애집안시에서 서남쪽으로 55㎞ 떨어진 양수향 해관촌 북쪽 만구(灣溝) 골짜기에 위치해 있으며, 서쪽으로 4㎞ 떨어진 곳에는 압록강이 흐른다. 유적 동쪽 2㎞ 거리에는 집안-환인 도로가 양수향 소재지를 통과하며, 남쪽 300m 거리에 해관 8대(隊)가 있다. 한편, 유적의 서쪽 13㎞ 떨어진 곳에는 칠개정자 관애가 있다.

형태

노변장 관애가 위치한 만구 골짜기는 길이 3㎞ 정도로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데, 양쪽 계곡은 가파른 절벽이다. 서쪽 산기슭에서 발원한 시냇물이 골짜기를 관통하여 해관촌 부근에서 양수천자하(凉水泉子河)에 유입되어 남류하다가 압록강으로 유입된다.

관애는 거칠게 다듬은 석재를 이용하여 쌓았는데, 성벽의 방향은 230°이며, 전체 길이는 170m가량이다. 성벽의 내부는 잔돌과 자갈로 채운 다음 진흙을 섞은 것으로 보이며, 성벽의 윗면에도 진흙으로 덮었을 가능성이 있다.

노변장 관애의 성벽은 동쪽 계곡에서 시작하여 충적 대지상에 수평으로 40m를 쌓은 후 다시 산기슭을 따라 산중턱의 가파른 수직 암벽까지 약 130m를 축조하였다. 하상의 붕괴로 인해 서쪽 끝부분의 20m가량이 유실되었으므로, 전체 차단벽의 원래 길이는 약 200m 내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 있는 성벽의 잔존 높이는 1~2m가량이며, 기저부 너비는 8m, 상부 너비는 1~1.8m이다. 계곡 건너편 서쪽 계곡부 위에도 차단벽 일부로 추정되는 돌무더기가 남아 있고, 관애 남쪽 70m 지점에도 보조 관애로 추정되는 석축 흔적이 남아 있다.

노변장 관애는 계곡을 가로질러 차단벽을 쌓았기 때문에, 현재 계곡물과 인접한 성벽은 거의 대부분이 유실된 상태이다. 그렇지만 계곡의 동쪽과 산기슭에 위치한 성벽의 경우 많이 허물어지기는 했지만 석축 성벽 자체는 잘 남아 있는 상태이다. 또한 관애 남쪽에 위치한 보조 석축 또한 허물어지기는 했지만,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본래 관애 남쪽 300m 지점에는 고구려 돌무지무덤들이 있었으나, 1983년 중국측 조사 당시에는 3기만 확인되었다.

현황

2012년 현재, 노변장 관애는 수풍댐으로 인해 압록강에 수몰되거나 경작으로 인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노변장 관애칠개정자 관애와 마찬가지로 압록강의 수로 교통과 집안 지역의 육로 교통이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예전부터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들은 대부분 관애가 위치한 외차구(外岔溝)나 양수 일대에 정박한 다음, 육로를 이용하여 집안시로 향했다고 한다. 이처럼 노변장 관애압록강 수상 교통로를 통제하던 도성 외곽의 군사 시설로 파악된다. 한편 중국 학자 왕면후(王綿厚)는 342년 전연(前燕)의 모용황(慕容皝)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 등장하는 남도(南道) 상의 중요 방어 시설로 파악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1984)
  • 여호규, 「집안 칠개정자 관애」(『고구려 성』I, 국방 군사 연구소, 1998)
  • 王綿厚, 『고구려 고성 연구』(문물 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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