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개정자 관애

한자 七個頂子 關隘
중문 七个顶子关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양수조선족향 외차구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성곽
양식 관애
크기(높이 0.6~2.2m
길이 150m
현 소재지 길림성 통화 집안시 양수향 외차구촌N : 40°53'51.90"E : 125°45'43.00"
정의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 양수향(凉水鄕) 외차구촌(外岔溝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관애(關隘).

개설

칠개정자 관애고구려의 도성인 국내성(國內城) 외곽의 군사 시설로 압록강 수로를 통제하기 위해 축조된 관애로 추정된다.

건립 경위

칠개정자 관애가 위치한 외차구는 혼강(渾江) 하구의 왼쪽 부근으로, 칠개정자산 계곡 입구 앞으로는 압록강이 흐른다. 환인(桓仁)에서 집안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나 관애의 동쪽 13㎞ 떨어진 곳에 노변장 관애(老邊墻關隘)가 위치하고 있고, 관애 남쪽 인근에 고구려 돌무지무덤이 여러 기 확인되고 있는 점을 볼 때, 당시 도성이었던 국내성을 방어하기 위해 고구려가 축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칠개정자 관애집안시에서 서남쪽으로 65㎞ 떨어진 양수향 외차구촌 서쪽 칠개정자산의 계곡 남단에 위치해 있다. 북쪽 200m 거리에 외차구 7대가 있고, 남쪽 300m 거리에는 계곡 입구가 있다. 계곡 입구에는 남북 폭 300~800m, 동서 길이 1,500m인 충적 대지가 펼쳐져 있는데, 본래 강의 수면보다 4m가량 높았다. 지금은 수풍댐이 만수위에 도달하면 해당 충적 대지는 물에 잠기게 된다. 계곡 앞으로는 압록강이 흐른다.

형태

칠개정자 관애는 계곡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북쪽으로 약 300m 들어간 곳에 계곡을 가로질러 축조되어 있다. 그 형태는 계곡 입구에서부터 점점 좁아지는 형태로, 천연의 자연 방벽을 이루고 있다.

관애는 주변 산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았는데, 성벽의 방향은 235°이며, 계곡물보다 약 3m가량 높다. 관애 중앙으로 계곡이 관통하고 있어 차단벽은 동벽과 서벽으로 나뉜다. 동벽의 전체 길이는 60m 전후로, 현존 길이는 40m 내외이다. 성벽의 잔존 높이는 2.4m, 기저부 너비는 9~11m이다. 동벽에서 남쪽 8m 지점에는 길이 20m, 너비 3.5m, 잔고 1~1.2m인 보조 성벽이 확인되는데, 참호의 역할을 담당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서벽의 전체 길이는 70~75m가량 되는데, 성벽의 잔존 높이는 0.6~2.2m이며, 기저부 너비는 8.5~10m가량이다. 서벽 동단에는 길이 15m, 너비 4.5m인 낮은 성벽이 확인되고 있는데, 옹성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황

칠개정자 관애의 동벽은 도로에 의해 잘려나간 서단부를 제외하면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였으나, 동벽 동단의 산기슭 아래로 도로를 신설함에 따라 많이 파괴되었다. 서벽은 동쪽 냇가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는 산비탈까지 축조하였는데, 성벽 자체를 확인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이 파괴되었다. 서벽 중앙으로는 도로가 지나간다.

관애의 성벽은 산의 자연석을 많이 이용하였으며, 심하게 허물어져 성벽 단면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또한 현재 돌들이 양쪽으로 많이 흩어져 외관상 둥그스름한 돌무더기처럼 보인다.

의의와 평가

칠개정자 관애압록강의 수로 교통과 집안 지역의 육로 교통이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예전부터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들은 대부분 관애가 위치한 외차구나 양수 일대에 정박한 다음, 육로를 이용하여 집안시로 향했다고 한다. 이처럼 칠개정자 관애압록강 수상 교통로를 통제하던 도성 외곽의 군사 시설로 파악된다. 한편 중국 학자 왕면후(王綿厚)는 342년 전연(前燕)의 모용황(慕容皝)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 등장하는 남도(南道)상의 중요 방어 시설로 파악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1984)
  • 여호규, 「집안 칠개정자 관애」(『고구려 성』I, 국방 군사 연구소, 1998)
  • 王綿厚, 『고구려 고성 연구』(문물 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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