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조 산성

한자 覇王朝 山城
중문 霸王朝山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재원향 패왕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성곽
양식 석축 산성|절벽 구간은 천연 성벽으로 이용
길이 1,260m
문물|보호단위등급 길림성 중점문물보호단위
현 소재지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재원향 패왕조촌
정의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 재원향(財源鄕) 패왕조촌(覇王朝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산성.

개설

패왕조 산성고구려의 두 번째 왕도인 국내성(國內城) 외곽에 수축된 산성이다. 혼강(渾江)과 신개하(新開河)가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며, 이들 하천의 연안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고구려 후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패왕조 산성집안시 소재지에서 서북 97㎞, 패왕조촌에서 동북쪽 4㎞ 떨어져 있다. 패왕조촌 동쪽 골짜기를 거슬러 동쪽으로 약 2.5㎞ 지점에 험준한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협곡이 있고, 이 협곡에 위치한 해발 764m[혹은 862m]의 산에 자리 잡고 있다.

패왕조 산성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혼강 연안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다. 산성의 북사면 아래로는 혼강이 동북에서 서남으로 흐르며, 산성의 서쪽에는 혼강의 지류인 신개하가 북으로 흘러 패왕조촌에서 혼강에 합류한다. 패왕조촌 앞으로는 혼강 유역에서 신개하 상류를 거슬러 노령 산맥을 넘어 집안으로 향하는 도로가 지난다. 북쪽 골짜기를 따라 약 3.5㎞ 내려가면 혼강 연안의 천안구촌(天安溝村)에 이르고, 골짜기 입구를 나와 혼강을 따라 약 4.5㎞ 내려가면 북둔촌(北屯村)에 이르는데, 그 앞에서 남류하던 부이강(富爾江)이 혼강에 합류한다. 서쪽으로 30㎞ 지점에 환인(桓仁)오녀 산성(五女山城)이 있다.

형태

패왕조 산성은 험준한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어, 동벽과 서벽 그리고 북벽의 서단이 모두 험준한 절벽이다.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아 키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서북 모서리는 바깥쪽으로 뻗어나갔고, 남벽은 안으로 조금 휘어 전체 평면이 사다리꼴을 이룬다. 성 내부는 경사가 가파른 산비탈이며 중앙부에 평탄한 대지가 펼쳐져 있다. 성 안에서 건물지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성벽의 축조는 높이 솟은 절벽을 천연 성벽으로 이용한 곳이 많으며, 성돌을 쌓아올린 곳은 산등성이를 따라 축조하였다. 대체로 외벽을 높이 축조한 내탁식(內托式)이며, 안팎의 경사가 완만한 곳이나 산마루 중앙에는 협축식(夾築式)으로 쌓기도 하였다. 가장 높은 곳은 21층으로 높이가 5.2m에 이르며 성벽의 폭은 대개 1∼4m이다. 성벽의 길이는 동벽이 298m, 서벽이 420m, 남벽이 247m, 북벽이 295m로 총 길이 1,260m이다. 산세가 낮은 곳과 남쪽 골짜기 입구의 평탄하고 완만한 곳에는 화강암 성돌로 성벽을 높이 축조하였다. 서벽 남단과 북벽 동단의 성벽은 높게 축조되었는데, 이 구간의 성벽이 잘 남아 있다. 특히 이 구간에서 성가퀴와 기둥 구멍[柱洞]의 흔적을 살필 수 있다.

성문은 북문과 남문 두 곳이 있으며, 북문은 북벽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다. 북문의 양쪽 편 성벽을 안쪽으로 연장하여 횡장방형의 평대를 마주보게 쌓아 문길도 성문 안쪽으로 연장되어 있다. 문길의 폭은 3m, 북문 바깥 8m 지점에 석축 성벽의 하단부가 남아 있고 그 동단이 북문 동측 성벽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반원형 옹성으로 추정된다. 옹성 바깥에는 두 겹으로 쌓은 석벽이 있는데 통행로로 추정하고 있다.

남문은 골짜기 입구에서 성 안으로 들어오는 지점으로 정문에 해당한다. 남벽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다. 문길은 약 9m 정도이나 전체적으로 훼손이 심하다. 성벽의 네 모서리에는 각대가 있고 그 위에는 각루(角樓)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현황

패왕조 산성은 산등성이의 자연 지세를 따라 가파른 절벽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전체적으로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최근 현장을 답사한 중국측 인사의 전언에 따르면 북벽을 중심으로 남아 있는 성벽의 잔존 상태가 양호하다고 한다. 현재 길림성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패왕조 산성은 거주나 경작에 적합하지 않은 산 위에 위치해 있고 둘레 길이도 1㎞ 정도라는 점에서 일상적 거주지로서의 기능은 없이 군사적 성격이 강한 성곽으로 파악하였고, 이러한 유형의 산성들이 고구려 전기 산성의 특징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성 안에서 많은 건물터와 토기 조각을 발견하게 되면서 종래의 인식을 바꾸어 거주성을 갖춘 성곽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도 있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이지만, 적어도 패왕조 산성이 혼강과 신개하의 연안로를 내려다보며 감시하는 주요 성곽이었다는 점에서 고구려사의 주요한 현장 유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 『集安縣文物志』,吉林省文化廳, 1984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中國地圖出版社, 1993)
  • 이전복 지음, 차용걸·김인경 역, 『중국 내의 고구려 유적』(학연문화사, 1994)
  •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哈爾濱出版社,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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