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동 대혈 유적

한자 國東 大穴 遺蹟
중문 国东大穴遗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왕진 상해방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동굴
크기(높이 높이10m, 너비 25m, 깊이 20m
조성|건립 시기/일시 고구려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3년
현 소재지 길림성 통화시|집안시 태왕진 상해방촌
정의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와 집안시(集安市) 태왕진(太王鎭) 상해방촌(上解放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제사 유적.

개설

국동 대혈 유적고구려의 제사 유적이다. 고구려의 중요한 신인 부여신(夫餘神) 유화(柳花) 부인을 모시고 매년 10월 동맹(東盟)에 왕과 관민이 모두 나아가 제사를 지낸 곳이다.

건립 경위

『삼국지(三國志)』에서 고구려의 제천 행사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고구려는 일찍부터 국내성 동쪽에 수혈(隊穴)이라는 큰 굴이 있어 이곳에서 수신(隊神)을 맞아 신좌(神座)에 모시고 국가적인 제의를 거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행사는 제천과 국조신에 대한 제의로서 왕실의 권위와 추수감사절의 의미까지 포함한 것이었는데, 국동 대혈은 이러한 기록과 일치하는 장소이다.

위치

집안시에서 압록강을 낀 대로를 따라 동쪽 5㎞ 지점에는 하변방촌이 있다. 여기서 동쪽으로는 북한의 만포(滿浦)로 건너가는 철교가 있고, 북쪽으로 뻗어간 공로(公路)의 서쪽에는 환문총(環文塚)이 있다. 여기서 강을 끼고 10㎞를 북쪽으로 가면 상해방촌이 나타난다. 강 건너 북한 땅에는 긴 아파트촌이 이어지고 있으며, 강을 따라 포장된 신작로는 서쪽으로 신의주까지 계속된다.

하변방촌 입구에는 ‘국동 대혈’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그 곳에서 좁은 길을 따라 서쪽의 산속으로 들어가면 첩첩산으로 이어지고, 산중턱에 자연 동굴이 보인다. 다시 산속으로 30여 분을 가면 산허리를 자른 듯한 큰 동굴이 나타나 심산유곡으로 절경을 이룬다. 이 동굴이 국동 대혈이다.

동굴 안에서 내려다보면 압록강의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편에는 북한의 만포와 강을 따라 달리는 운봉선(雲峰線)[북한자강도(慈江道)의 만포-운봉(雲峰) 철도]의 기차 선로가 지척에 보이는 곳이다. 아래쪽에 자리 잡은 큰 동굴을 국동 대혈이라고 부르며, 그보다 100m 쯤 산 위에 있는 동굴을 통천혈(通天穴)이라고 부른다.

통천동(通天洞)은 국내성에서 17㎞ 정도 떨어져 있으며 압록강 물이 언저리를 흐르고, 건너편에는 북한의 만포가 있다. 바로 이곳에 고구려 왕이 수신(隨神)을 맞이하여 제사를 지낸 국동 대혈이 있다.

형태

동굴의 방향은 동남방이고 입구의 높이는 10m, 너비 25m, 깊이 20m이며, 이 동굴 안에는 또 하나의 작은 동굴이 있어, 그 곳에 신위(神位)를 모셨던 것으로 짐작된다. 동굴 앞에는 평탄한 약 660㎡[200여 평]의 대지가 있어 종교적 행사가 가능하였다고 추정된다. 이 동굴은 집안 소재 국내성 부근에 있는 동굴로서, 압록강 가에 있으며 국내성의 동쪽에 있다.

현황

국동 대혈 유적은 1983년 집안현 문물조사대가 조사한 바 있으며, 산 속에 있는 동굴이기 때문에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의의와 평가

국동 대혈 유적고구려의 제천 행사인 동맹을 거행했던 곳이라고 추정된다.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국가 태평을 기원했던 동맹은 산 위의 통천동과 국동 대혈에서 왕과 귀족들의 제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어 산 아래의 마을과 강변에서는 일반 백성들이 모여 춤과 노래를 즐겼다고 생각된다. 이로써 전 국민의 제전이 이룩된 것이며 국민적 융합과 일체감을 기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맹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속신제(土俗神祭)로 이어졌음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사』 4(국사 편찬 위원회, 1997)
  • 서길수, 『고구려 유적 답사』(돌베개, 1998)
  • 전호태,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사계절 , 2000)
  • 국립 공주 박물관, 『고구려 고분 벽화 모사도』(국립 공주 박물관, 2004)
  • 김이나, 『세계 문화유산 고구려 고분 벽화』(예맥 출판사, 2005)
  • 이도학 외 2인, 『태왕의 나라·고구려 유적』(서경 문화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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