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수 산성[요원시]

한자 龍首 山城[遼源市]
중문 龙首山城[辽源市]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요원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산성
양식 토축
크기(높이 10m~1m
길이 동벽 300m, 서벽 290m, 남벽 286m, 북벽 130m
둘레) 1,100m
문물|보호단위등급 성급문물보호단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50년대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3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0년
현 소재지 길림성 요원시N : 42°53'37.98"E : 125°8'51.94"
정의

길림성(吉林省) 요원시(遼源市)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산성.

개설

용수 산성요원시 동쪽 용수산에 있으며, 군사 요충지의 확보 및 지방 지배의 거점으로 활용된 고구려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발견 경위

용수 산성은 1950년대에 발견되었다. 1983년 서남쪽 모서리에서 연꽃무늬 와당이 발견되었고, 1984년 12월에 남쪽 연못 부근에서 홍갈색의 새끼줄무늬 큰널조각 기와[승문대판와(繩文大板瓦)]가 발견되는 등 여러 유물이 간헐적으로 나왔다.

1990년을 전후하여 요원시 문물관리소에서 수차례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7월에 남북 골짜기 연못에서 다량의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위치

용수 산성은 길림성 요원시용수산에 위치하고 있다. 남북 방향으로 길게 뻗은 산줄기의 남단에 자리하고 있는데, 동·남·서 3면은 평탄한 개활지로 전반적으로 요원 분지를 향해 돌출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산성 남쪽으로 동요하(東遼河)가 남쪽으로 흐르고 있는데, 동남 방면의 위진하(渭津河)와 서남 방면의 이수하(梨樹河)가 동요하로 유입되며 큰 강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 지역은 길림 하달령 산맥(吉林哈達嶺山脈)과 대흑 산맥(大黑山脈) 사이의 분지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북 방면을 제외하면 동요하의 발원지로 수계(水系) 교통로상의 요충지이다.

형태

용수 산성의 성벽은 동벽 300m, 서벽 290m, 남벽 286m, 북벽 130m로 총 1,006m이다. 서벽은 기단부 너비 7m, 윗변 너비 1.5m, 잔고 2m로 모래흙과 진흙을 번갈아 판축하였다. 남벽 서단은 높이가 10m에 이르는데, 황갈색 사질토와 흑탄색(黑炭色) 니질토(泥質土)를 섞어 판축한 층위가 확인되며 성벽을 불에 구워 단단하게 한 부분도 보인다. 동벽 중단은 너비 3m, 윗변의 너비 1m, 잔고 1m가량이다. 성문은 서문과 북문 2개가 있으며 세 모서리에 각루의 흔적이 명확히 보인다. 서문 근처에 원형 언덕이 있고 그 남북 양측에 자연 연못이 있다. 1990년 무렵의 조사를 통해 성 내부의 건물터 6곳을 확인하였다.

현황

용수 산성은 구역 전체가 공원으로 개발되고 이용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훼손이 진행되었다. 특히 동벽의 남단과 북벽의 동단은 파손이 심해 성벽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다만 서벽과 북벽의 서측 성벽, 동반의 중단은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용수 산성이 위치한 요원 지역은 고구려 초기 중심지인 압록강 중류 유역에서 휘발하(輝發河)를 거쳐 요하 상류 방면으로 나아가는 교통로상의 요지이다. 그러나 현전 문헌 기록으로는 고구려가 언제 이 지역을 확보하였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1세기 중반~2세기 전반 선비 세력과 연합해 한 군현을 공격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이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4세기 전반 길림 지역의 부여를 병합하면서 이 지역에 본격적인 통치력을 미치며 용수 산성을 축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 안에서는 주변의 다른 산성에 비해 유물이 많이 나왔는데, 이로 보아 단순한 군사 시설만이 아니라 지방 지배의 거점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 길림성 문물지 편찬위원회, 편 『요원시문물지』,1988
  • 여호규, 『고구려성 2-요하 유역편-』(국방 군사 연구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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