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三屯子 戰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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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 三屯子战斗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길림성 도문시 간평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관련인물/단체 | 박승길, 신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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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시기/일시 | 1920년 6월 4일 |
종결 시기/일시 | 1920년 6월 6일 |
발생|시작 장소 |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 |
종결 장소 | 중국 길림성 화룡현 삼둔자 |
1920년 6월 4일 길림성 화룡현 삼둔자 일대에서 독립군이 두만강변의 일본군 수비대와 치른 전투.
삼둔자 전투는 함북 종성군 강양동(江陽洞) 습격전,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삼둔자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치른 총격전, 중국길림성 화룡현 삼둔자 서북방 고지[일광산] 기습전 등 세 차례의 소규모 전투로 나눌 수 있다.
먼저 1920년 6월 4일 새벽 5시경 박승길(朴承吉)이 거느리는 약 30명의 신민단(新民團) 독립군 부대는 두만강을 건너 함북 종성군 강양동(江陽洞)에 있는 일본군 초소를 습격하여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이를 ‘강양동 습격전’이라고 한다. 신민단 독립군 부대는 전투 직후 강을 건너 귀환하였다.
두 번째로는 6월 4일 같은 날 아침, 다른 갈래의 독립군 20여 명이 강양동을 목표로 삼둔자에 이르렀다. 이 때 경계를 강화하고 있던 일본군 종성 수비대 순찰병들이 이들을 발견하고 사격을 가하였다. 이에 독립군 부대도 응사하여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 사상자는 별로 없었다.
마지막으로 독립군의 과감한 기습에 충격을 받은 일본군 남양(南陽) 수비대아라요시[新美二郞] 중위는 휘하 병력과 헌병·경찰관 등 20여 명을 이끌고 오전 11시경 불법으로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침입하였다. 이들은 삼둔자에서 몇㎞ 떨어진 두만강 하류로 도강하여 배후에서 독립군을 기습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막상 삼둔자에 도착하니 독립군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군은 무고한 마을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2명을 사살하고 3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대항하여 부근에 있던 수십 명의 독립군은 6월 6일 밤 10시 경 삼둔자 서북방의 일광산[범진령]에 주둔하고 있던 아라요시 등의 일본군을 기습한 뒤 안산(安山) 방면으로 퇴각하였다. 이 과정에서 독립군 2명이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