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륭 24개돌

한자 興隆 二十四個돌
중문 兴隆二十四块石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백초구진 흥륭촌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성격 건물 유적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4년
현 소재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왕청현 백초구진 흥륭촌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도문시(圖們市) 왕청현(汪淸縣) 백초구진(百草溝鎭) 흥륭촌(興隆村)에 있는 발해 시대의 다락집 유적.

개설

흥륭 24개돌 유적은 발해(渤海 )의 창고로 추정되는 다락집의 주춧돌 유적이다. 중국에는 현재 24개돌 유적이 총 9곳에 전하고 있는데, 이 유적은 완전히 파괴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건립 경위

흥륭 24개돌 유적의 창건 년대는 불분명하지만 출토 유물로 보아 발해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흥륭 24개돌 유적은 흥륭촌에 자리 잡고 있다. 유적은 지세가 비교적 평탄한 개활지에 위치해 있다. 유적 북쪽에는 북에서 남으로 가야하[嘎呀河]가 흐르고 있으며, 동남쪽으로 1.5㎞ 거리에는 흥륭 고성보(興隆古城塞)가 있다. 유적 서쪽 약 200m 되는 곳에는 연길-왕청으로 통하는 옛 도로가 남북으로 뻗어 있다.

형태

흥륭 24개돌 유적의 정면 길이는 8.68m, 측면 길이는 7.30m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유적은 동서를 정면으로 하고 있으며, 다른 유적과 마찬가지로 현무암의 주춧돌이다. 조사 당시에는 주춧돌이 21개였는데, A줄에 5개[A1, A2, A4 없음], B줄에 8개, C줄에 8개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21개의 주춧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하북성과 산동성에서 이주해온 이재민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훼손되었다. 주춧돌들은 대부분 집을 짓거나 움집을 짓는데 사용되어 지금은 깨진 1개의 주춧돌 일부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유적 주변에서는 갈색과 회색의 기와 조각이 출토되었는데 겉은 소면(素面)이고 안에는 천무늬를 새긴 두께 1.7∼2.8㎝ 정도의 기와였다. 또한 손 끝으로 누른 무늬[지압문(指壓文)] 기와 조각, 짐승 얼굴 무늬[수면문(獸面文)] 기와 조각, 질그릇 조각과 쇠활촉 등도 출토되었다. 유적 주변에는 우물 자리도 있었다.

현황

흥륭 24개돌 유적은 1964년 연변대학박진석 교수가 발견하여 조사한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으나, 2012년 현재, 유적이 완전히 파괴되어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흥륭 24개돌 유적은 현재 본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만큼 훼손되었다. 따라서 이후 발굴 조사를 통해 24개돌 유적 여부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 이병건, 『발해 24개돌 유적에 대한 건축적 연구』(건국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01)
  • 윤현철, 「흥륭 24개돌 유적에 대한 연구사적 정리」(『백산 학보』 제63호, 백산 학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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