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산 고분군

한자 六頂山 古墓群
중문 六顶山古墓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성격 무덤
관련인물 정혜공주
문물|보호단위등급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49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53~1957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58년 7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59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3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4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보수|복원 시기/일시 1949년
문물 지정 일시 1961년 3월 14일
소재지 길림성 돈화시 강연촌 육정산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돈화시(敦化市) 강연촌(江沿村)육정산에 있는 발해 시대의 고분군.

개설

육정산 고분군은 육평산(六平山)·우정산(牛頂山)으로도 불리는 육정산 위에 분포하고 있는 발해의 무덤 유적이다. 왕실 귀족의 무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무덤도 분포해 있으며, 총 240여 기의 무덤이 조사되고 있다. 1949년 계동 중학(啓東中學)에서 고분군을 발굴하던 중에 발해 3대 문왕의 둘째 딸인 정혜 공주(貞惠公主)의 무덤을 발견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위치

육정산 고분군은 돈화시 강연촌육정산 서쪽 두 번째 봉우리 남쪽 사면에 있다. 육정산은 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이를 통칭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고분군 남쪽은 목단강(牧丹江) 충적 평원과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 3㎞ 떨어진 곳에는 영승 유적(永勝遺蹟), 목단강 서안에는 묘둔 사찰터, 서남쪽으로 7㎞ 떨어진 곳에는 건국 초기의 동모산성으로 추정되는 성산자산성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육정산 고분군은 1949년 돈화시에 위치한 계동 중학에서 정혜 공주 묘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같은 해 계동 중학과 연변대학에서 9기의 무덤을 조사하고 정혜 공주 묘의 묘실 천정을 보수하였다. 1953~1957년 길림성 문물관리위원회와 길림 박물관에서 두 차례 조사를 하였고, 1958년 7월에는 길림성 문관회(吉林省文管會)와 동북 인민 대학(東北人民大學) 역사과에서 조사하였으며, 1959년 길림성 박물관(吉林省博物館)과 동북 사범 대학(東北師範大學)의 주도로 다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1963년에 일부 무덤을 조사하였으며, 1964년에는 조중 연합 고고대(朝中聯合考古隊)에서 다시 발굴하였다. 2004년에도 대유지보고계획에 따라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에서 돈화시 문체국과 시 문물관리소의 도움을 얻어 재조사하였다.

형태

육정산 고분군은 1949년 발해 3대 문왕의 둘째 딸인 정혜 공주 묘가 발견되면서 왕실 귀족 무덤지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발굴과 조사가 이루어졌고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조사는 2004~2009년까지 이루어진 발굴 조사였다.

1964년에 이루어진 조중 연합 고고대에 의한 발굴 결과는 1997년에 출판된 『육정산과 발해진』에 수록되어 있는데, 당시는 1무덤 구역과 2무덤 구역을 모두 합쳐 80여 기가 보고되었으나 2004년부터 이루어진 발굴 보고서에서는 1무덤 구역에서 109기, 2무덤 구역에서 134기가 확인되었다. 그 유형도 움무덤, 돌널무덤, 광실묘, 돌방무덤 등으로 세분되었으며, 그 중 단연 우위를 점하는 것은 움무덤으로 전체의 66%에 이른다. 움무덤의 수치가 높은 것에 대해서 발해의 주민 구성에서 말갈이 고구려 유민보다 많았다는 근거로 활용하는 경향도 있으나, 육정산 고분군의 위치도를 살펴보면 정혜 공주 묘가 위치한 1구역 중심부와 그 남사면은 규모가 큰 돌방무덤이 자리잡고 있고, 정효 공주 묘를 기준으로 그 북쪽에는 규모가 작은 움무덤 계열이 자리잡고 있어 신분적 격차를 보여준다. 2구역에서도 규모가 큰 돌로 쌓은 무덤들이 중앙부를 차지하고 있고, 그 주변으로 다양한 크기의 움무덤들이 자리잡고 있어 1구역과 같은 신분상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고분의 분포와 묘실 구조의 차이가 신분상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인지, 또한 어떠한 의미가 반영되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출토 유물

육정산 고분군은 가장 높은 서쪽에서 두 번째 봉우리 남쪽 기슭에 있다. 남쪽 기슭은 두 개의 굽이로 나뉘며 이를 1구역과 2구역으로 분류하였고, 두 고분 구역에서 총 240여 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이들의 유형은 규모가 다양한 돌방무덤·돌널무덤·움무덤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2004년도 조사를 거쳐 토광과 석실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무덤은 모두 현무암으로 한 단 한 단 쌓아올렸거나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았으며, 그 평면은 장방형 또는 방형을 이룬다. 일반적으로 무덤 앞에는 용도와 묘도가 있다. 묘문은 남향이고, 무덤 위에는 봉토가 있다. 무덤 안에서 암키와·수키와·와당 등이 발견되었다.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정혜 공주 무덤 안에서는 묘비·암수 돌사자·도금한 청동 못·옥벽·목이 긴 도제 병·도기항아리·은행잎 장식·금으로 만든 고리·도기 대접·쇠로 만든 고리·쇠로 만든 대구·꼭지가 있는 와당·화살촉·은 귀걸이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육정산 서남쪽에는 영승 유적, 서쪽에는 묘둔 사찰지와 동모산으로 비정되는 성산자산성, 북쪽에는 오동성, 쌍승 유적, 강동 24개돌 유적이 있으며, 동남쪽에는 청(淸)의 시조 사당이 있다. 2012년 현재 육정산 고분군의 1구역과 2구역은 잔디를 심어 정비를 해 놓았고, 1구역의 5호 고분에는 내면을 확인할 수 있도록 투명 시설을 설치해 놓았다. 이곳은 특히 청나라 시조의 발흥지로 명명된 후 정비를 거쳐 관광지로 개발 중이다.

의의와 평가

육정산 고분군발해 건국 초기 왕실 귀족 무덤이다. 이 무덤은 석실묘와 석관묘, 그리고 토광묘로 구분되며, 2004년 발굴 보고에서는 이를 흙무덤[토묘(土墓)]과 돌무덤[석묘(石墓)]으로 구별하였다. 2004년에 이루어진 발굴은 주로 2구역에 집중되었고, 이곳에서 화장을 한 움무덤 다수가 발견되었다. 이에 정혜 공주 묘가 발견된 1고분 구역은 왕실 귀족 무덤, 움무덤이 다수 발견된 2고분 구역은 평민 무덤으로 인정하였고, 2구역의 축조 연대가 1구역의 축조 연대보다 빠를 것이라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정식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아 그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 보고서의 발간이 이루어지면, 발해 건국 초기 구국 지역의 상황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길림성 문물지 편찬위원회, 편 『敦化縣文物志』,1985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敦化市文物管理所, 「吉林敦化市六頂山古墳群2004年發掘簡報」(『考古』 6, 2009; 김진광 역, 『중국의 발해 유적 발굴 관련 논문선역』, 동북아역사재단, 2009)
  • 김진광, 『북국 발해 탐험』(박문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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