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 고분군

한자 北大 古墳群
중문 北大墓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팔가자진 상남촌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성격 무덤
양식 석축단실봉토묘
크기(높이 0.6~0.88m
길이 2.3~2.9m
너비 1~1.7m
범위(길이 남북 250m
면적 250,000㎡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43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4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3년
소재지 길림성 화룡시 팔가자진 상남촌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화룡시(和龍市) 팔가자진(八家子鎭) 상남촌(上南村)에 있는 발해 시대의 고분군.

개설

북대 고분군발해 왕실 귀족 무덤으로 1973년 70기 중 54기가 발굴되었는데, 대부분 석축 단실 봉토묘(石築單室封土墓)이다.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발해의 장례 풍속과 경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무덤 유적으로 평가된다.

위치

북대 고분군은 길림성 화룡시 팔가자진 상남촌 북쪽에 있다. 동쪽으로 400m 지점에는 팔가자 임업국(八家子林業局) 삼림철도가 있고, 남쪽 500m 지점에는 해란강(海蘭江)이 흐르며, 동북쪽 5㎞ 지점에는 서고성(西古城)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남쪽 팔가자 남산 산성(八家子南山山城)과는 1.5㎞, 북쪽 군민교 발해 건축지(軍民橋渤海建築地)와는 1㎞ 떨어져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북대 고분군은 1943년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서성향(西城鄕)으로 향하는 도로에 의해 동·서 두 구역으로 나뉘었다. 1964년 중조 고고 연합 고찰단(中朝考古聯合考察團)이 조사하였고, 1973년에는 연변 박물관(延邊博物館)과 화룡현 문화관(和龍縣文化館)에서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동쪽 구역에 위치한 무덤 54기를 조사하였다.

형태

북대 고분군에서 조사된 54기 중 18호 고분을 제외하면 모두 지하에 축조한 석축 단실 봉토묘이다. 각각의 무덤은 남북향으로 이미 봉토는 유실되었으며, 무덤 덮개돌은 사라졌다. 무덤칸은 점토·모래 또는 판석을 깔았다. 무덤벽은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았으며, 그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54기 중 묘도가 있는 것은 14기이다. 묘실 평면은 장방형이며 길이는 2.3~2.9m, 너비는 1~1.7m, 깊이는 0.6~0.88m이다. 무덤 천정은 평천정과 말각 고임 천정 두 종류가 있다. 장식은 앙신직지이며 단인장과 2인 합장이 있다. 장구로는 모두 목관을 사용하였다. 발굴된 무덤 19기에서 인골이 발견되었으며, 한 개체분에서 많은 것은 10개체분에 이르며, 인골은 묘실 북쪽·중간, 그리고 남쪽에 쌓여 있으며, 아동~노년까지 다양하다. 현재 장구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54호묘에서 청동 팔찌가 발견되었다.

출토 유물

출토 유물로는 은제·청동제·철제의 금속제 유물과 도기류, 방직품 등 모두 40여 점이 있다. 금속제 유물로는 은비녀·도금한 청동 고기장식·고리 형태의 청동 가위·도금한 연꽃잎장식·끌형태의 쇠화살촉·자루구멍이 있는 쇠칼·마름꽃무늬 동경·청동 허리띠장식 등이 있다. 도기는 니질과 협사 두 종류가 있으며, 유물로는 손잡이가 두 개인 유약을 바른 도기 단지·도기솥·도기병·도기 주전자·도기 주발·도기 동이·도기 벼루 등이 나왔다. 방직품으로는 평행무늬가 있는 마포가 있으며, 이 밖에 뼈로 만든 비녀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북대 고분군의 규모는 남북 250m, 동서 1,000m이며, 100여 기에 달하는 무덤이 있고, 그중에서 70여 기가 조사되었다. 무덤 구역 서쪽에 위치한 무덤들은 대부분 땅을 개간하거나 집을 지을 때 훼손되었다. 2006년 답사 당시에는 이미 상당 부분이 논밭과 과수원 등으로 개간되어서 그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였다. 다만 유적 평면도를 보면 팔가자진으로 통하는 남북으로 뻗은 도로를 중심으로 그 평지인 동쪽과 산사면으로 이루어진 서쪽의 광범위한 범위에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북대 고분군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는 북쪽으로 군민교 사찰지, 장항 고분장항 고성, 동쪽으로는 하남둔 고성, 하남둔 고분군과 동남구 사찰지, 남쪽에는 팔가자 남산 산성, 서쪽으로는 명암 고분군 등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유적이 자리한 곳이 지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곳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이곳에서 발견된 50여 기의 고분은 중경 시기의 제법 큰 규모를 지닌 고분군으로서 발해의 생활상, 문화상 그리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북대 고분군은 무덤 구조와 장례 방법 등을 볼 때, 돈화시에 있는 육정산 고분군·영안 대주둔 고분군과 유사하다. 특히 출토 유물의 하나인 청동 대구와 도기 등은 육정산에서 출토된 것과, 손잡이가 두 개인 유약을 바른 도기 단지와 동경은 영안 발해진에서 출토된 것과 동일하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북대 고분군은 발해 때 조성된 무덤군으로서 발해의 매장 풍속·경제 상황·장례 풍속 등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길림성문물지 편찬위원회, 편 『和龍縣文物志』,1984
  • 『和龍縣志』(吉林文史出版社, 1992)
  • 김진광, 『북국 발해 탐험』(박문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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