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朴奎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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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Kuican Piao |
중문 | 朴奎灿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
시대 | 현대/현대 |
연변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족 교육가.
박규찬은 연변대학 창시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장기간 교학, 과학 연구 등에 힘썼다. 1948년에는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슬하에 아들 딸 남매를 두었는데 모두 연변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규찬(朴奎燦)[1918~1994]은 1918년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출생하였다. 1941년 신경 법정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용정 제1 국민고등학교·연길 사도 학교·연길 사범 학교·용정 동흥 중학·용정 인민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용정 연합 중학에서 교도 주임 및 교장직을 맡았다.
1948년 12월 연변대학 주비위원회[籌委會]에서 활동하였으며 연변대학 비서처장, 교무 처장, 부총장 등을 거쳐 1978년부터 1982년까지 연변대학 총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길림성 사회 과학 협회 연합회 제1기 부주석 및 길림성 교육 협회 제1기 부회장 직무도 맡았었다.
박규찬은 연변대학에 재임하는 동안 『연변대학 건교 방안』, 『연변대학 방침』, 『연변대학 전업 설치 및 과정 설치 방안』, 『연변대학 10개 판학(辦學, 건학) 요강』, 『연변대학 20년 계획』 등 주요 문건을 직접 작성하였으며 『연변대학 교사』, 『연변대학 대사기』, 『연변 조선족 교육사』, 『중국 조선족 교육사』 등을 편찬하였다. 또한 「조선족 문자 체제에 관한 몇 가지 의견」 등의 논문도 발표하였다.
개혁개방 이후 박규찬은 연변대학에서 처음으로 국제 교류를 강화하자는 구상을 제기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였다. 또한 연변대학을 민족 대학으로 꾸려나가기 위해, 그리고 중국 조선족 교육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일생을 바쳤다. 1994년 1월 28일 암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