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예

한자 大門藝
중문 大门艺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성격 왕족
성별 남자
정의

고대 시기 만주 지역에 세워졌던 발해대조영의 둘째 아들이며 대무예의 동생.

가계

대문예발해대조영의 둘째 아들로서 대무예와 친형제이다.

활동 사항

대문예는 당나라 중종 초기 당나라에 가서 숙위(宿衛)로서 머물고 있다가 당나라 현종(玄宗)의 개원(開元) 초에 발해로 돌아왔다. 개원년에 발해 북쪽에 위치한 흑수 말갈은 당나라와 관계가 밀접한 것을 이용해 흑수주(黑水州)를 세우자 발해 군왕 대무예의 불만을 자애 냈다. 대무예는 흑수주가 당과 협력해 자기를 협공할 것을 우려해 대문예에게 지령을 내려 흑수 말갈을 진공하게 하였다.

그러나 대문예는 지금 흑수 말갈을 치는 것은 발해의 수배가 되는 무력을 가진 당나라의 감정을 도발하여 마치 전성 시대에 30만 대군으로 당나라와 싸웠다가 망한 고구려와 같은 운명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렸다. 그렇지만 대무예대문예의 말을 듣지 않고 진군을 강행시켰다.

대문예는 할 수 없이 군대를 이끌고 북진하였지만 흑수 말갈과 경계 지역에서 다시 대무예에게 글을 올려 중단할 것을 말하자, 대무예는 크게 노하여 대일하(大壹夏)와 교체하고 그를 불러들여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대문예는 두려워서 당나라로 망명하였다. 당나라로부터 좌효위장군(左驍衛將軍)을 받았다. 대무예는 마문궤(馬文軌) 등을 당나라에 보내어 그의 죄상을 말하고 죽일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당나라는 대문예를 서안(安西)[지금의 신강성(新彊省)]에 머무르도록 하였다. 그리고 발해에 이도수(李道邃) 등을 보내어 의리상 죽일 수 없어 영남에 유배하였다고 알렸다.

그러나 대무예는 732년 장수에게 명하여 해적을 이끌고 등주登州[산동성 봉래현(山東省蓬萊縣)]를 공격하여 자사 위준(韋俊)을 죽이고, 군의 일부를 나누어 유주(幽州)[지금의 북경(北京)]로 진군하게 하여 그 부근을 불안에 몰아넣었다가 물러갔다. 그래도 대무예대문예에 대한 울분은 쉽게 풀리지 않아, 몰래 자객을 모집하여 당나라에 보내서 낙양천진교(天津橋) 남에서 대문예를 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에 화가 난 당 현종은 황명을 내려 자객을 모두 붙잡아 처결해 버리도록 하였다. 735년에 대무예는 당에 사절을 보내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였다. 대문예는 끝내 발해로 돌아가지 않고 당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죽었다.

참고문헌
  • 손영종, 『조선 력사 인명 사전』(과학 백과 사전 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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