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시 조선족 곡예단

한자 延吉市 朝鮮族 曲藝團
영문 YanJi Korean Buyarame Groups
중문 延吉市朝鲜族曲艺团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공원로 51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예술단체
전화 0433-2717909
현 소재지 연길시 공원로 51호
정의

길림성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가 설립한 조선족 곡예 예술 전문 단체.

설립 목적

연길시 조선족 곡예단은 인재를 발굴하고 예술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려는 취지하에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변천

1978년 5월 창립된 연변 곡예 실습 연출대가 연길시 조선족 곡예단의 전신이다. 1978년 3월 5일 국영 조선족 곡예단인 연변 곡예단을 설립하였다. 1981년 9월 연변 곡예단[조선족 단체]을 연길시에 넘기었으며 연길시 실험 미간 예술 극단으로 개명하고 연길시 문화국에서 관리하였다. 1981년 11월 5일 연길시 실험 미간 예술 극단은 원 연길시 문공단을 합병하였으며 연변 가무단의 일부 핵심 인원을 전입하여 연길시 조선족 곡예단[편성 인원 60명, 단장 김성민]으로 개명하여 곡예 연출 활동을 진행하였다.

1981년 11월부터 1982년 2월까지 내부 조정을 거쳐 연변 곡예단의 악대 성원을 예술단 민악대로 분배하였다. 1983년 2월 1일 연길시 문화국김종문 국장은 곡예 예술을 지지하기 위하여 한창식 등 20여 명의 곡예 연기자를 예술단으로 불러들여 연길시 조선족 예술단 곡예대를 조직하였다.

1984년 7월 25일 연길시 정부는 ‘조선족 문화 예술을 발전하고 조선족 곡예 레퍼토리를 발전하고 두 가지 정신문명 건설을 촉진하는’ 정신하에 연길시 조선족 예술단 곡예대를 독립하게 하여 연길시 조선족 곡예단으로 개칭하였다.

2007년까지 연길시 조선족 곡예단은 많은 성과를 취득하였지만 문화 체제 개혁하에 해체되어 곡예단은 다시 연길시 조선족 예술단에 속하게 되었으며 이름을 곡예부로 고쳤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30여 년간 연길시 조선족 곡예단은 전국 소수 민족 곡예 연출에 여러 번 참가하여 조선족 곡예 풍격을 알렸고, 전문가와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조선족 곡예가들은 열심히 창작하고 연출 기교를 탐구하여, 수없이 많은 곡예 작품을 창작해내었으며 각종 상장을 수상하였다.

1993년과 2004년 연길시 조선족 곡예단은 문화부, 국가 민위, 중국 문련, 중국 곡협 등이 주최한 제1기, 제2기 전국 소수 민족 곡예 연출에서 레퍼토리 1등상, 연출 1, 2, 3등을 수상했으며, 감독상, 청년 신인상, 학술 논문 발표상 등 20여 개 상장을 수상하였다. 동시에 재담(才談) 『구담포리(口談普里)』 등 작품은 중앙 방송국, 성 주급 방송국이 주최한 춘절, 원단야회 등 중대한 명절 야회에서 연출하였다. 또한 연길시 조선족 곡예단은 성 인민 정부에서 발급한 ‘장백산 문예상’과 주 인민 정부에서 발급한 제1∼5기 ‘진달래 문예상’을 획득하였으며 길림성 전문 극단으로부터 1급 단체라는 칭호까지 수여 받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KBS, 한국동해 문화원, 조선 희극가 동맹, 독일 한인회, 일본조총련, 미국 한인회, 주조 중국 조선족 경제 문화 발전 협회 등 문화 예술 단체, 협회와 대외 문화 예술 교류와 학술 세미나를 진행하였으며 중국 조선족 곡예의 국내외 지명도를 제고하였다.

현황

연길시 조선족 곡예단에는 편성 인원이 30명 있으며, 그중 연구관 인원 1명, 국가 1급 연기자 2명, 2급 연기자 6명, 3급 연기자 18명, 대전 이상 학력자 18명이다. 곡예단 내에는 곡예부, 성악부, 무용부, 창작실, 감독실, 문예과, 국제 대외 정보 연락부, 판공실 및 인터넷 사이트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연변연길시 조선족 곡예단은 설립된지 30년 이래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인재를 배출하였다. 동북 3성 조선족 집거구를 돌아다니면서 광대한 조선족들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문화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 『연길시지』(길림성 연길시 지방지 편찬 위원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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