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李同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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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Tongchun Li |
중문 | 李同春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성격 | 독립운동가|교육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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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출생 시기/일시 | 1872년 1월 5일 |
몰년 시기/일시 | 1940년 10월 15일 |
출생지 | 함경북도 회령 |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교육가이자 독립운동가.
이동춘[1873~1940]은 함경남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1894년 청나라의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서울에 주재할 때 통역관을 지내며면서 고종의 신임을 얻었다. 1907년 양정 학당을 세우는 등 구국 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1909년 동만주(東滿洲)로 망명하였다.
이동춘은 1909년 5월 연길 변방 공서 교섭과 번역관으로 임명되었고, 국자가에 간민 교육회를 창립하였다. 이때 한국 교포의 토지를 몰수하는 중국 법령이 공포되자 총통 위안스카이를 찾아가 철회를 요구, 개간민들의 토지 소유를 합법화하였다.
이동춘을 비롯한 박문영·이봉우 등은 1910년 10월 정식으로 간민 모범 학당을 설립하였고, 그 뒤 연변 각지에 70여 개의 중학교·소학교를 설립하였다. 1913년 4월 김약연 등과 연길에 간민 자치성 기구 간민회를 창립하였다. 1914년 이동춘은 간민들이 개인 신분으로 입적 수속을 할 수 있으며 정식으로 국가의 법률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하였다. 1940년 10월 68세 나이에 용정에서 병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1963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