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민 교육회

한자 墾民 敎育會
중문 垦民教育会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한인 자치 단체
설립자 이동춘, 이봉우, 구춘선, 박찬익, 정재면, 윤해
설립 시기/일시 1907년 8월
해체 시기/일시 1914년 3월
최초 설립지 연길
현 소재지 연길
정의

1907년 8월 연길에서 조직된 한인 자치 기구.

개설

간민 교육회북간도 한인 사회를 효과적으로 규합하고 항일 민족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설립 목적

간민 교육회는 항일 민족 운동 단체로서 항일 운동을 전개하여 조선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교육 활동을 하려는 것이다.

변천

1910년 3월 조선족 종교계 인사 40여 명이 조선족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국자가에 “간민 교육회”를 설립하려고 연길 부윤(府尹)에게 인가 신청을 하였다. 도빈은 조선족 교육에서 “중국어를 주요 과목”으로 가르치고 교수법과 기타 교과서 등도 “청나라의 지도에 의거”할 것을 전제 조건으로 “간민 교육회” 설립을 허락했다.

1911년 중국에서 신해 혁명이 일어났다. 손중산을 위수로 하는 “동맹회”는 만청 봉건 통치를 뒤엎고 중화민국을 창건하였다. 중화민국 임시 정부에서는 “연성 자치제(聯省自治制)”를 주장했다. 이것은 “간민 교육회”에게 대단한 활력소가 되었다. 간민 교육회에서는 이동춘 등 4명의 대표를 북경에 파견하여 여원홍(黎元洪) 부대통령을 만나 연변 지구 조선족 사회 상황을 보고한후 “간민 자치회”의 설립을 허락해줄 것을 바랐다. 여원홍은 찬성을 표하면서 “자치”란 두 글자를 취소할 것을 지시하였다.

1913년 5월 “간민 교육회”는 중국 지방 정부의 허가를 받고 국자가에서 총회를 소집하였다. 회의에서 “간민회 장정”을 정식으로 통과한 후 간부들을 선거, 임명하고 동남로 관찰사서(東南路觀察使署)의 인가를 받았다. 김약연이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간민 교육회는 원래 명동학교(明東學校)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민족 운동가들이 조직한 간민 자치회(墾民自治會)가 일제의 방해와 중국의 견제에 의해 회명을 변경한 것으로, 중국 관청의 허가를 얻어 합법적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본부는 연길 국자가에 두었으며 북간도 각지에다 지회를 두었다. 설립시의 주동 인물은 이동춘·이봉우·구춘선·박찬익·정재면·윤해 등이었다. 1912년경 본부의 임원은 회장 이동춘, 총무 박정기, 연구회장 이봉우, 지회장 조기정, 평의장 손운순, 재무장 허순, 장부장 허곤, 찬리원 윤해 등이었으며, 회원 수는 300여 명에 달하였다. 간민 교육회는 강력한 자치 활동을 통해 항일 민족 운동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활동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한인 사회를 조직화하는 한편, 한인들의 민족 의식 고취와 경제력 향상에 주력하였다.

민족주의 교육을 담당하던 한인 학교로는 명동학교 외에도 정동(正東)·광성(光成)·창동(昌東)등의 중학교가 있었고, 국자가에는 간민 모범 학당(墾民模範學堂)을 설립, 운영하고 있었다. 한인들의 경제력 향상을 위해서 농촌에 식산회(殖産會)를 만들어 자금을 늘렸으며, 생산조합·판매조합을 세워 운영함으로써 농촌 경제를 활성화하였다. 한편, 기관지 『교육보(敎育報)』를 간행하여 상호 이익을 도모하고, 시베리아의 『권업 신문』과 미주의 『신한 민보』까지 주문해 한인 사회에 보급시켰다. 이러한 활동 외에도 한인 밀집 지역인 수분전자(綏芬甸子)나자구(羅子溝)에는 무관 양성 학교인 대전 학교(大甸學校)까지 건립, 본격적으로 독립군 양성을 추진하였다. 한편, 활동 자금은 북간도 각사(各社)마다 권학 위원 1인을 두어 매 호당 1년에 1조문을 원칙으로 징수하였다. 그 밖에도 지세·토지 매매세 등을 징수하여 충당하였다. 간민 교육회는 1911년 중국의 신해 혁명을 계기로 간민회로 확대, 발전하여 한인의 자치 활동과 독립운동을 보다 활기차게 전개해 나갔다.

의의와 평가

간민 교육회는 반일 친중국 사상을 선전하면서 ‘신학’을 제창하고 ‘구학’을 개량하기 힘썼다. 그리고 중국에 있는 조선인의 권리를 수호하고 반일 민족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반일 민족 기지를 건설하였다. 이후에는 간민회로 발전하여 간도 조선인들의 단합을 촉진하고 구심점으로 되었다.

참고문헌
  • 중국 조선 민족 력사 발자취 총서 편집 위원회『개척』(중국 조선 민족 력사 발자취 총서 제1권, 민족출판사, 1999)
  • 박걸순, 北間島 墾民會 선행조직의 추이와 성격, 한국근현대사연구 제51집( 200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4854)
  • 우리 역사 바로 알고 삽시다.(http://www.yanbianews.com/bbs/zboard.php?id=discussion&no=26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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